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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여성시대가 오리라(2019. 7. 11) 作家의 꿈, 땡제이의 꿈


 애청자님들, TGIF!


1. 먼지가 되어, 이윤수


2019. 7. 10(수)

폐차하기로 마음 먹은 지 48일만에, 우여곡절 끝에 결국 차를 폐차하러 보냈다. 며칠 전까지 움직이기는 하던 차가, 오늘은 미션오일이 완전히 다 새었는지 움직이질 않는다. 시동을 켜도 무조건 기어가 P위치로 가고, 결국 견인줄로 차를 끌어서 수송용 트럭에 올려서 싣고 갔다.

덩치 크고 엔진 좋게 잘 태어난 차였는데, 인연이 닿지 않아 10만킬로도 못 달린 상태에서 폐차장으로 가는 차는, 마지막에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그렇게 저항하며 갔다. 나도 아내도 마음이 안 좋았다.

그동안 고마왔다. 부디 잘 가라..그렇게 마음 속으로 인사를 했다. 생명이나 정이 없는 무생물과도 정이 든다는 것이 참 신기한 일이다. 차에게도 다음 생이 있다면, 부디 다음에는 멀리, 오래 다니는 차로 태어나기를 빌어 본다.



2. 저 평등의 땅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


패아스북에서, 기자 생활하는 유영선 부장의 신입 기자 맞이에 즈음한 글을 읽다 보니, 문득 나 직장생활 시작하던 시절에 비해 세상이 너무도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사실 세상은 한 순간도 쉬임없이 변하는 게 이치일 텐데, 그런 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과 1990년대 초반 그 시절과 지금 정부조직이 본질적으로 바뀌었는지 여부는 조금 다른 문제인 것 같기는 하다. 많은 모습이 달라지긴 했는데,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난 걸까?

1990년대 초반의 사무실은 종종 차관이나 실장 같은 분이 일해 온 게 성에 안 차면, 과장, 서기관, 사무관을 앞에 세워 놓고 "야, 이 개새끼들아. 이 경복궁 수위만도 못한 놈들, 세금 도둑놈들아!" 이렇게 쌍소리와 훈계를 섞어 시전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지금은 그런 식으로 했다간 아마 본인이 뼈도 못 추릴 것이다.

그 사이의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공직에 여성 진출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리라. 1991년 중앙공무원교육원 연수받은 동기 243명 중에 여성이 고작 세 사람뿐이었는데, 여성이 훨씬 많아진 지가 이미 오래전 얘기고, 아무튼 9급, 7급, 5급 시험을 통해 공직에 진출하는 사람 중에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아졌다. 그 여성들이 최고위급(장관)을 비롯하여 고위급 자리에 점점 더 많이 진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양질전환의 법칙에 따라 정부조직의 문화도 산출물인 정책도 진짜 변화의 물결을 맞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는 고위급에 남성이 대부분 포진되어 있어 조직문화는 여전히 남성 중심이라고 보여진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여성들이 미래 정책 변화의 파도를 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3. 푸른 애벌레의 꿈, 시인과 촌장


 전에 한번 읽었던 류시화 시인의 산문집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을 다시 뒤적거리다가 '배장과 파종'이라는 글을 또 만났다.
 맞아, 힘겹고 어두운 시간을 매장이라고 규정할지, 파종된 것이라고 규정할지는 본인이 정하는 게 인생이다. 얼마 전에 읽은 글귀처럼, 내가 안 된다고 인정하기 전까지는 안 되는 일은 없는 거다. 아집 부리는 것으로도 들리지만, 인생은 포기하는 순간 포기가 되는 것이다. 끝내는 건 항상 자기 자신인 거다.

매장과 파종

...다만 '매장'과 '파종'의 차이는 있다고 나는 믿는다. 생의 한때에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디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둠 속을 전력질주해도 빛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매장된 것이 아니라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에 열릴 수 있도록.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매장이 아닌 파종을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4. Take me home, country roads, John Denver


브러셀 근무하면서부터 인연이 깊어진 김육곤 원장님의 책 <농업가치를 아십니까>에서 '농민은 국토의 정원사(Gardener)'라는 표현을 다시 만났다.

나는 주EU 대표부 농무관으로 김원장님은 농협 EU 사무소장으로 벨기에 브러셀에서 함께 근무하던 시절에 김원장님이 독일 농업 관련 자료에서 발견한 그 표현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살아났다.

그런 표현이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쓰일까 궁금하여 Google이나 네이버를 검색해도 그런 표현을 쓴 자료들은 잘 찾아지지 않는다.

사람의 손이 한번 간 국토공간은 정글처럼 그냥 방치하면 상태가 악화된다. 농민은 기본적으로 먹을거리를 생산하지만, 생산 과정에서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넘나들며 국토공간을 관리하는 정원사이기도 하다는 데 나도 한 표를 던진다. 업의 본질이 그런 것이다.

내가 누리는 농촌의 아름다운 경관은 농민들의 무의식적이고 비시장적인 국토관리 활동의 부산물인 것이다. 사람들마다 선호가 다르겠지만,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국토를 유지할 수도 없지만, 나는 도시와 공장으로만 가득찬 국토공간을 원치 않는다.


5. 보너스 트랙 : Bridge over troubled water, Simon & Garfunkle


https://www.youtube.com/watch?v=H_a46WJ1viA


 행복한 금요일,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PS :음악 잘 듣고 계시죠? 가끔 신호 보내 주세요. DJ가 혼자 벽 보고 얘기하는 것 같을 때 가끔 신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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