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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곧 답이다(2019. 9. 17) 作家의 꿈, 땡제이의 꿈


애청자님들, 추석 명절(연휴?) 후 일상생활 복귀는 연착륙하셨는지요? 저는 로마에 나와 있으니 추석이 연휴가 아니었으니 연착륙하고 말고가 없었습니다. 그냥 매주 월요일이 힘들게 느껴지는 일상적인 월요병을 겪었을 뿐이지요. 어느덧 화요일까지 지나갔습니다. 일기예보상으로는 이제 최고기온이 30도 이상으로 올라갈 일이 없는 것으로 나와있는데, 실제는 약간 습도가 있고 아직도 더위가 좀 남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뭐, 한국의 가을도 그렇게 시원하기만 한 건 아닌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1. 커피 한 잔, 펄 시스터즈

혼자 커피 마시고 혼자 점심 먹고. (2019. 9. 16)

월요일이기 때문인지, 한국 돌아갈 날이 가까와짐에 따라 무의식이 받는 압박감 때문인지 기분이 조금 침체된 오늘, 옆 방 친구 Shankar가 출장을 간 터라 혼자 커피 마시고 혼자 점심식사를 한다.

혼밥을 잘 즐기는 자칭 프로혼밥러들도 있지만, 나는 혼자 밥 먹는 게 언제나 낯설다. 수다를 섞어 먹는 밥이 더 좋다. 어쩌면, 밥이 고파서 식사를 하는 게 아니라 수다가 고파서 밥을 먹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릴 적에 산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단 말은 내 본질을 전혀 모르고 뱉은 말이었던 게 틀림없다. 혼자서는 하루도 못 살 사람. 한국에 돌아가도 종종 혼자인 지방생활을 해야 하는데, 언제나 혼자 사는 데 익숙해지려나.


(2019. 9. 16(2))

나와 다르게 사고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거슬린다고 울컥해서 치받는 것은 조심하자. 사람이란 게 다 자기 생긴대로 살다 가는 것이지, 내 사고와 행동방식이 무슨 유일한 옳은 길이 아니지 않은가. 너무 당연한 이치인데도, 살다 보면 내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은 곧 잘못된 사람이라고 낙인 찍는 짓을 나는 너무도 태연히 자행하고 있지 않은가!

작년 말에 책 읽다 옮겨 놓은 구절을 다시 읽어본다.

나와 다르다고 공격하면 손해가 되어 돌아온다

공호이단 사해야이(攻乎異端, 斯害也已)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무시하는 것보다 위태로운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름 이유가 있으며 의미가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 종교와 철학 등 살아온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로지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면 나만이 정통이고 상대방은 이단이라는 편견과 고집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단에 대한 공격과 무시는 때로는 폭력과 협박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단'이라는 단어는 <논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논어>의 (위정)편에 보면 공자가 이단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자세히 나옵니다.

공호이단 사해야이(攻乎異端, 斯害也已)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해 공격한다면
이것은 손해가 될 뿐이다.

나와 다른 쪽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배척한다면 결국 자신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단에 대한 공격과 강요가 결국 심각한 갈등과 분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세상에는 저마다 다른 색깔의 피부를 가진 수많은 민족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생각과 철학, 종교와 문화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인류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한 서로 다름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논어>의 가르침입니다. 오로지 나만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주장하는 순간 나와 다른 모든 것들이 이단으로 여겨지고, 그 결과는 갈등과 분쟁, 폭력과 전쟁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서로 다름이 인정되는 사회, 위대한 화합을 이루어낸 세상은 우리 인류가 꿈꾸어야 할 아름다운 미래입니다. 나와 다른 관점, 종교, 사상, 철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공격한다면 큰 불행을 초래할 것입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攻乎異端



2. San Francisco, Scott Mckenzie

 그냥 가을이면 한 번쯤 생각나서 듣는 곡을 골라 봤습니다.

 2019년 9월 17일, IFAD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후배가 선물로 주고 간 책을 읽었습니다. 역사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고 즐겁습니다. 

존 허스트,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 2019. 9. 17 읽은 책.

# 인쇄술이 루터를 살리고 개신교의 길을 열어 주었구나. 그리고, 정치세력의 지원도 #

중세 시대에 대부분의 사제, 주교, 대주교는 그들이 특별히 경건하거나 신앙심이 깊어서 교회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그 시절에는 교회가 가장 크고 부유한 조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갔다. 오늘날 당신이 공무원 조직이나 대기업이나 정계나 대학에 들어가는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 신성한 성직에 취임했다. 다시 말해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흥미로운 일을 경험하기 위해, 고액의 급료를 받기 위해, 잘살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성직자가 된 것이다. 교회에는 당신을 부유하게 만들고 주변의 친구와 친척들에게 직업을 줄 기회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부유하고, 약탈을 일삼고, 부패한 조직이 예수의 가르침과 초기 기독교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존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비천한 사람들이었지만 이제 교황과 주교들은 궁전에서 살았다. 예수는 재물의 위험에 대해 경고한 바 있으며 초기 기독교도들은 서로의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 모든 것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회의 신성한 문서는 비평가들의 수중에 들어가면 다이너마이트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교회가 어떠헥 그토록 오랫동안 치명적인 비판을 모면했을까?

성서는 라틴어로 되어 있어서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읽을 수 있었다. 교회는 “성서를 해석할 처음이자 마지막 권한을 지닌 것은 교회뿐이다”라고 말했다. 누군가가 교회의 가르침이나 관행을 비판하기 위해 성서를 이용하고 그래서 교회에 폐를 끼친다면, 그들은 이단으로 규정되어 화형에 쳐해졌다. 이단이란 거짓 신자들로서 자신들과 기독교 세계에 대한 위험 요소였다. 그런데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화형을 모면한 이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마르틴 루터였다.

(중략)

루터는 어떠게 이단자로 몰려 화형당하는 것을 피했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인쇄술의 발명이었다. 교회에 대한 루터의 모든 비판과 고발이 바로바로 인쇄되어 유럽 전역으로 널리 유포되었다. 인쇄술은 새로운 발명품으로, 루터가 교회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을 때는 인쇄술이 발명된 지 고작 50년이 지난 후였다. 교황이 루터를 무너뜨리기 위해 조직을 꾸리기 전에 모든 사람이 이미 그의 비판 글을 읽고 있었다. 예전에 여러 차례 있었던 것처럼 한 나라 안에서 아주 소수의 추종자들만 있는 이단자가 아니었다. 루터는 아주 빠르게 국제적인 추종 세력을 확보했다.

루터가 살아남은 또 다른 이유는 독일 제후들 가운데 일부가 로마에 대한 그의 공격을 환영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계몽주의가 종교를 공격한 방법#

존 허스트,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프랑스 계몽주의의 위대한 업적은 백과사전을 제작한 것이다. 이 방대한 규모의 백과사전은 첫 번째 근대적인 백과사전으로 오늘날 우리가 백과사전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처럼 저명학 학자들이 작성하고 고루한 권위를 지닌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모든 것이 이성을 적용했으며 지식 내부에 그 어떤 계층적 분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급진적인 백과사전이었다. 즉, 교회가 좋아할 듯한 신하고가 하느님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이 백과사전에서 하느님을 찾으려면 어디를 보아야 할까? D항목(하느님 Dieu)이다. ABC순 색인으로 지식을 정리했는데, 이렇게 만드는 행위가 교회와 지고의 진리를 갖추고 있다는 교회의 주장에 대한 저항이었다. 모든 지식이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어졌으며 모든 것이 동일한 시험을 받았다. 예배에 관해서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진정한 하느님을 숭배하는 방법은 결코 이성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은 이성의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편집자들은 교회나 왕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만 했는데,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검열제도가 가동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노아의 방주가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지를 보면 백과사전이 어려운 영역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 수 있다. 설명은 노아의 방주가 얼마나 컸는지를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틀림없이 대단히 컸을 것이다. 유럽의 동물들을 각각 두 마리씩 수용했을 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동물들도 그렇게 실어야 했다. 동물들뿐인가. 오랜 기간 방주에 머물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동물들이 먹을 사료가 필요하다. 사자들을 먹이기 위해서는 양 두 마리로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백 마리의 어린 양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주 거대한 배였음에 틀림없는데 성서에 따르면 그 배를 만든 사람은 오직 네 명뿐이다. 그들은 아주 크고 강한 사람들이었음에 틀림없다! 백과사전은 마치 성실하게 조사를 수행하는 것처럼 하면서 그 이야기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3. 나만 시작한다면, 이오공감

https://www.youtube.com/watch?v=nzFf3-H06q8


'나만 시작한다면 달라질 세상'이라는 표현에 딱 맞는 책을 읽었습니다.

  2019년 9월 18일 <시작의 기술>이라는 일종의 자기개발서를 두 번째 읽었습니다. 처음 읽을 때 머리를 띵하고 맞은 느낌이었는데, 다시 읽어 보니 머리가 띵하기도 하고, 아무튼 제 안에서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 구절들이 많았습니다.


시작의 기술(개리 비숍)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어떻게 생각하고 뭐라고 이야기할지는 전적으로 자신한테 달려 있다. 그 문제는 성가신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고, 어딘가로 데려다줄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 일로 기가 죽을 수도 있고, 힘이 날 수도 있다.

실제로 아우렐리우스 같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외부 사건이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고 믿었다. 내 현실은 내 마음을 가지고 내가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상처 느끼기를 거부하면 상처 자체가 사라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여기서 잠까 저 문장을 곱씹어보라.

지금 내 삶이 요 모양 요 꼴인 이유는 처한 상황이나 주변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나와 나누는 자기 대화가 의욕을 꺾어놓기 때문임을 알겠는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훨씬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실제의 삶이 아니라 특정한 무의식적 반응이다.


이미지: 텍스트


시작의 기술(개리 비숍)

당신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는 다 같은 처지다. 남의 삶은 늘 하이라이트만 보이고, 내 삶은 늘 무대 뒤가 생각난다.

이제 잠시, 배꼽에 앉은 먼지는 그만 만지작거리고 당신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 촉촉이 감성에 젖은 자기 위안을 멈추고 당신의 현실, 실제 삶에 접속하라.

이렇게 해보는 이유는 현실에 기초한 시각에서 상황을 보기 위해서다. 이렇게 하면 삶 자체와 삶의 온갖 문제를 제대로 된 태도로 직시할 수 있다.. 주위 모든 사람이 자신의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면, 당신보다 더한 문제를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고 있다면, 당신도 분명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어’라는 말은 당신이 완벽한 해결책을 갖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 말은 당신이 운전대를 잡고 있고, 결정권이 당신에게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줄곧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여태 잘 해오지 않았던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늘 즐겁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할 수 있다. 현실을 호도하거나 여러분의 기분을 잠시 좋게 해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여러분이 지나온 기록을 보라. 당신은 정말로 잘 해내왔다. 늘 그래왔듯이 당신은 해결할 것이다. 그때도 해냈고, 이번에도 해낼 것이다. 정말로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해내라, 그리고 말하라.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사진 설명이 없습니다.


4. 보너스 트랙 : 노래가 아닙니다. 신선하게 느껴지는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 앤드류 양의 연설입니다. 난 사람이네요. 노래가 아닌 동영상을 음악메일로 보내는 건 처음입니다. 보너스니까 그래도 괜찮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k2bFQEWxhbg&t=23s


 수요일, 한 주가 꺾이네요. 깊어가는 가을 속에서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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