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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구라였다(2019. 10. 1) 作家의 꿈, 땡제이의 꿈


 애청자님들, 10월의 첫 날을 어찌 보내셨는지요? 저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한 달에 하루는 꼭 연가를 쓰곤 했는데, 5주 째 연가를 안 썼더니 괜히 힘들다는 느낌이 납니다. 바쁘게 일하는 것도 아닌데, 출근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인가 봅니다.


1.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여행스케치

3주만의 로마 시내 외출(2019. 9. 28)

며칠 전 안경테가 그야말로 '똑' 부러졌다. 예전에 쓰던 안경으로 버티다가 로마 시내에 있는 안경점에 가기 위해 오전에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려고 했는데, 아뿔싸 지하철 공사한다고 이번 주말과 10월 세 번의 주말엔 차량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할 수 없이 굽이굽이 돌아서 시내에 들어가는 30번 버스를 탔다.

베네치아 광장에 내렸다. 날씨가 선선해져서 관광객이 많아진 것인지, 8월말에 로마 나왔을 때보다 사람이 훨씬 많다. 코르소 길 근처에 있는 안경점에 들렀다. 안경점 점원은 영어가 잘 안 되고(나도 영어 잘 안 되지만) 우린 이태리어가 전혀 안 되니, 점원이 구글 번역기를 가동해서 간신히 의사소통을 했다. 다행히 부러진 내 안경테와 같은 모델의 제품이 있다. 들고간 안경알을 끼워서 써보니 역시 예전 안경보다 잘 보이고 가벼워서 만족했다. 아내도 안경테를 하나 샀다. 이제 몇 달 뒤면 안경에 대해 전문가적인 한국어를 구사하면서 물건 고를 수 있다!

그새 점심시간이 되어 무얼 먹을까 궁리하다가, 꼬르소 길에서 가까운 한식당은 없고, 스페인광장 근처에 제법 알려진 일식당에 들어갔다. 가격이 은근 걱정되었는데, 15유로 짜리 세트메뉴가 있다. 나는 초밥세트를 아내는 연어구이 세트를 시켰다. 가격 대비 만족도 좋은 날이었다. 한식당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시켜먹는 것과 같은 수준의 가격이었다.

바르베리니 역 앞 극장에서 영화 <Yesterday>를 한다길래, 로마 시내의 유일하게 현대식 건물에 들어선 리나센테(Renascente) 백화점에서 구경을 하며 한 시간여를 때우다가 영화를 보러 갔다.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닌데 구경을 참 즐겁게 하는 아내의 뒤를 쭐레쭐레 쫓아 다녔다. 이태리 물건들이 디자인이나 색감은 참 좋은 것 같다. 영어로 말하고 이태리어로 자막이 나와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영화를 볼 수 있는 만용은, 영화가 노래가 많이 나오는 덕이다. 몇 달 있으면 한글 자막 나오는 영화를 볼 수 있다! 5관까지 있는 극장의 제 5관에은 좌석이 80여석 밖에 안 되었고, 손님은 열 명이 될듯 말듯했다. 이태리 사람들은 영화는 그다지 즐겨 보지 않는 것 같다.

다시 베네치아 광장으로 가서 30번 버스를 탔다. 큰 소리로 통화하는 할머니, 떼지어 왁자지껄한 고등학생들, 스마트폰 소리 크게 해 놓고 게임하는 아줌마..버스에서 내려 이태리 사람들은 참 시끄럽다는 데 아내와 의견 일치. 굽이굽이 돌아오는 버스에서 창 밖 거리를 보니, 로마에 처음 도착했을 때 차가 없어 6km 떨어진 쇼핑센터에 물건 사려 우리 세 식구 걸어갔다 온 기억이 태초의 일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지며 문득 피로감이 몰려온다. 로마에 살만큼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라우렌티나 역에서 집까지 걸어 올라왔다. 아파트에 댄스클럽 같은 게 있는데, 음악 소리 시끄럽고 중학생들인 고등학생들인지 노느라고 왁자지껄 시끄럽다. 저녁 9시가 되어 가는 지금도 밖에서는 음악 소리 쿵쿵거리다가 마이크 잡고 뭐라 떠드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독일 사람들은 이태리 사람들을 무질서하게 노는 민족이라 깔보고 그런데도 나라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고, 이태리 사람들은 독일 사람들이 재미 하나도 없이 사는 것 같다고 한심하게 여긴다고 한다.

어제 끓여서 남겨 놓은 된장찌개에 호박전을 붙이고 야채 샐러드를 만들어 저녁을 먹었다. 된장찌개가 향수를 달래준다. 우리집 된장찌개가 식당 된장지개보다 맛있더라. 요즘은 가끔 내가 된장찌개를 끓인다. 아내는 내가 된장국을 많이 먹어봐서 자기보다 잘 끓인다고 계속 끓이라고 부추긴다. 정말 더 잘 끓이는 걸까? 나의 Soul food이긴 하니, 그럴 지도..


이미지: 음식


2. 입영전야, 최백호

https://www.youtube.com/watch?v=ru_pRXCtzqQ


말년 병장의 마음은 모르지만

오늘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던 Shankar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사무실이 B-wing의 내 사무실과 붙어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으면 단박에 알 수 있었지만, 그가 출장 간 사이 그의 사무실이 C-wing으로 옮겨 갔는지라 연락을 주고받는 게 조금 복잡해졌다. 몇 번 그의 사무실 쪽으로 갔다가 그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던 끝에 필리핀 동료 Jezsel로부터 Shankar가 출근했다가 집에 일이 있어 휴가를 내고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늘 가는 식당에 혼자 갔다. 귀국일로부터 4개월 13일 전인 오늘, 문득 출근하는 날 점심에 매 끼 이 파스타를 먹어도 100그릇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할 때까지 19주 정도가 남았고, 19 곱하기 5는 100이 안 되니까..이걸 왜 이렇게 세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방위병으로 병역의무를 마쳤으니, 병장 계급장은 달아 본 적이 없지만, 하루하루가 고약하게 길고 지루하게 느껴져 그 하루하루들이 별 탈 없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병장의 마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방위병들은 소위 ‘알다마’가 며칠 남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부대로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1990년대였으니까 토요일에도 출근) 을 제외하고출근을 해야만 하는 날짜 기준으로 얼마 남았다는 표현이다. 방위들도 상병 말년이면 병장 말년처럼 소집해제 날이 언제나 오나 매일매일 세고 앉아 있기는 매한가지다. 점심 먹고 나서는 매일 오던 길이 아닌 작은 공원을 거쳐서 오늘 길로 살살 걸어서 들어왔다. 내 전임 국장님이 머리 아플 때 나와서 거닐곤 했다는 공원이다.

일정 금액 이상 물품과 서비스 구입시 면세 혜택을 주는데, 7월에 그 절차가 조금 복잡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안경테를 사고 지불을 하고 영수증을 받아오고 나서 보니, 사전에 비용추계서를 제출해서 면세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나처럼 옛날 식으로 덜컥 사서 계산하고 영수증을 받아오면 면세를 안 해 준단다. 혹시 무슨 해결방법이 없겠는지 알아보려고 담당자에게 찾아갔으나 자리에 없고 이메일을 보내도 회신이 없다. 7월에 공지했는데 내 부주의로 그리 했으면 대책 없다는 소리라도 답신을 받아야 마음이 편할 텐데, 이태리 출신 직원이 그렇게 빨리 답을 주리라 생각하는 내가 욕심이 큰 거다.

아무튼, 서서히 정을 떼는 과정인지 요 며칠 전부터 이태리에 머무르고 있는 데 대해 가볍지 않은 피로감이 느껴진다. 멀리서 보는 한국은 여러 가지 이슈로 무지 복잡하고 사람들 몸과 마음이 피곤할 텐데, 내가 배부른 헛소리를 하는 건가. 아. 휴가가고 싶다. 여름 휴가 다녀온 지 언제라고.


이미지: 음식


3.  타타타, 김국환

https://www.youtube.com/watch?v=fqZOF1u_rWM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정말 나이를 먹어도 저 자신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지한 상황에서 폐부를 찌르는 가사입니다.


내가 사랑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구라’였다.

소설 삼국지(‘삼국지 연의’)를 탐독하던 내가, 뒤늦게 정사 삼국지나 사실을 근거로 중국 삼국의 역사를 풀어 나가는 책을 읽을 때는 소설을 읽을 때만큼의 흥미로움과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그 무미건조함에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나는 나관중의 구라에 흥미를 느낀 것이지, 진수 등 역사가의 사실에 입각한 진술(그도 편향성이 있겠지만, 소설 쓰듯 구라를 칠 수는 없었으리라)을 읽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 아니었다.
딱 영웅문같은 무협지 읽는 게 내 취향에는 맞는가 보다. 이런 것도 경험을 통해서야 깨닫는 내가 우둔한 것이지.

내가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지만, 나는 그저 ‘이야기’가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었을 뿐인 게다. 소설 삼국지를 재미있어 하는 것과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는 거랑은 사실 엄청나게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정말 내가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은 줄’로 잘못 알았다. 수호지 읽기 좋아하면 송나라 역사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건가? 쯧쯧..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말 알기나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싶다.


4. 보너스 트랙 : 연극이 끝난 후, 샤프

https://www.youtube.com/watch?v=s3uPXokhpnA


 인생이 끝나는 시점에서 객석에서 선 관객의 심정으로 자기의 지나간 한 생애를 들여다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그래도 괜찮은 공연이었다고 생각이 들까요, 아니면 실수 투성이여서 엉망이었던 공연이었다고 생각이 들까요? 그런 생각할 새도 없이 지나가 버리는 한 편의 꿈같은 게 인생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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