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시간 : 2022/11/11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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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Winston, Thanksgiving)
상쾌한 아침 맞으셨는지요? 어느덧 11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곧 첫눈도 오겠지 싶습니다. 은근 첫눈이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애도 아닌데.
당초에는 이번 주말 전주에 혼자 머물 계획이었지만, 캐나다 나가 사는 고등학교 동창이 잠시 한국 들어와서 벙개 모임이 생겨 서울 올라갑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1.George Winston, Thanksgiving
오늘은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 한 곡 선곡하기 시즌 4>를 하루 쉬어 가는 대신, 클래식으로 분류되는 지 안 되는 지 모르는 조지 윈스턴의 <Thanksgiving> 을 골라 봤습니다.
가을과 겨울이 만나는 지점에 이 곡만큼 잘 어울리는 음악도 잘 없는 것 같습니다. 뭔가 차분한 듯 다소 침울한 듯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40분씩 넘어가는 교향곡, 협주곡 듣다가 소품곡 들으니 짧아서 좋기는 하네요.^^
2. 샤프, 연극이 끝난 후
인생은 한 편의 생방송, 연극이라는 비유를 많이 하지요. 대본도 없고 재방송, 녹화, 편집이 안 되는 인생이라 쉽지가 않습니다. 하긴, 다 정해져 있으면 재미없는 연극이 될 지도 모를 일이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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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연기. 2009년 10월 어느 날의 기록. 아이 6학년 때.
1. 2009. 10. 18. 18:57
일요일 오후 사무실에 나왔다. 다음 주에 국정감사가 사흘이나 잡혀 있고, 담당하고 있는 "농림어업인 삶의 질 5개년 계획"의 2차 계획 수립이 더뎌지고 있고 해서 챙길 일이 많은데, 일이 잘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다 마음 먹기 나름이지만, 주말에 나오는 게 나 개인의 경우에는 그다지 생산적이라고 생각되질 않는다. 쉬기로 정해진 날은 그냥 쉬어버리는 편이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더 생산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여섯 시 삽십 분 경에 아들내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늘 묻듯이, "집이니? 뭐 하고 있어?"라고 묻는데, 답이 이상하다. 밖이란다. 일찍 들어간다더니 왜 아직 밖이냐고 묻자, 핸드폰 메시지로 얘기해 주겠단다.
온 메시지는, "엄마가 늦게까지 안 들어왔다고 문 잠그고 안 열어줘요"다.
아내와 통화를 해 보니, 집으로 들어오기로 약속했던 네 시 반경부터 전화를 해도 잘 안 받고, 메시지도 씹고, 나중에는 전화가 꺼져 있더니, 나하고는 통화를 한 걸로 봐서 일부러 전화를 끈 거라면서, 잘못을 빌고 들어올 때까지 도와주지 말라고 내게 당부한다.
세 사람이 가족을 이루고 있을 때 둘 간에 다툼이 생기면, 남은 한 사람은 왠지 자신이 "중재나 조정"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는데, 지금 내가 그렇다.
그렇지만, 스스로 한 약속을 안 지키면서 엄마의 전화에 반응도 안 하는 아들의 행동이 굳어진 패턴으로 변하는 것은 바람직할 것 같지 않다. 둘 사이에 해결하도록 가만히 있을 생각이긴 한데, 실상은 가혹한 면도 있다.
스무 살, 이른 바 성인이 된 뒤에도 사람이란 얼마나 약하고 약속을 잘 못 지키는 존재인가? "딱 한 잔만!" 이라는 빈말 비슷한 약속으로 시작해서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마시기도 하고, "금방 들어갈게"라고 선언해 놓고 밤 열 두시를 넘기는 짓은 또 얼마나 잘 하는가?
그렇게 사람이란 게 약한 존재이고 100% 약속을 지킨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긴 하고 그래도, 약속을 신중하게 하고, 최대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사람의 삶의 자세로서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제법 쌀쌀한 날씨에 밖에서 이런 저런 생각하고 걱정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아들 걱정이 마음 한 켠에 있지만, 난 중재 역할을 찾으려고 하기 보다는, 두 사람이 결론을 내도록 기다려야 할 것 같다.
2. 2009. 10. 18. 20. 30
저녁 여덟 시가 조금 안 되어 사무실의 대기성 근무 상황이 종료되었는데, 아이는 여전히 집에 안 들어가고 동네 상가에서 안 들어가고 버티고 있다. 집에 들어갈려도 아내와의 역할 분담상 들어갈 수가 없어, 사무실에 조금 더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홉 시 거의 다 되어 명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명수) "아빠, 지금도 문이 잠겨 있는데?.."
(나) "벨을 눌러 봐.. 추운데 어서 들어갔으면 좋겠다.."
사실은 그 조금 전에 명수 엄마와 통화해 보니, 아내는 명수가 벨만 누르면 열어 줄 계획을 하고 있었다.
통화 조금 뒤에 명수에게 전화를 해 보니, 전화기가 꺼져 있다.
명수 엄마에게, '명수 들어왔나?'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없다. '이 녀석이 아직도 안 들어가고 있나?' 생각하다가, 명수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명수가 들어왔단다.
(명수 엄마) "...자기 사무실에 일이 많았나 보네?"
(나) "이제 끝났어."
(명수 엄마) "지금 갈게."
우린 한 편의 연극을 한 셈이다. 명수는 추운데 밖에서 세 시간 동안 서성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중에 집에 가서 명수 엄마에게 들어보니,
명수가 주장하는 집을 나간 이유는, 엄마가, "집에는 왜 들어오니?"라고 힐난해서 였고,
나중에 집에 들어온 이유는, "추워서.."였다나.
자식 한 녀석도 키우기 힘든데, 옛날 어른들은 어떻게 열 명씩 자식을 키우셨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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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장희, 한잔의 추억
20년 전에 정리해 둔 저의 음주 흑역사를 다시 읽어 봅니다. 지금은 그냥 웃고 넘어갈 만한 일이지만, 참 위험하게 술을 마시고 다녔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요즘에 술 마시고 다니는 아들내미를 보고 있으면 그 시절 저처럼 주량을 넘게 마시고 다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이 되는 저를 보면서, 그 시절 내 부모님은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걱정도 내리걱정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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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 인하여 빚어진 웃지 못할 사건들...1
나는 중 2때 술을 처음 배워, 고 2때 사악한 친구들을 만나(그들은 나를 보고 사악하다고 하겠지!) 본격적으로 술(소주 및 막걸리)을 먹어대기 시작했고, 학력고사 끝난 뒤에는 술하고 웬수라도 진 것처럼 퍼 마셔댔다. 그런 학우들이 좀 있었을 줄로 안다만... 참고로, 고등학교 때 같이 술을 퍼먹던 친구놈들은 죄다 같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던 놈들이었는데 거의 같은 국민학교(현재명 서울 중동초등학교)를 나온 놈들이었으며, 우리가 매주 금요일 밤이면 반드시 찾아가던 포장마차에서는 시험 잘 치라고 정성스레 포장한 엿을 주기도 했다(그 포장마차에는 주인 아줌마의 딸내미(우리 또래)가 가끔 나와 도와주곤 했는데, 그 얼굴이 빵빵하다 하여 우리가 '빵숙이'라 별명을 붙여주었다). 엽기적인 넘들이지... 하여간, 학력고사 이후 술 마시다가 필름도 많이 끊겼고 술병도 많이 났고, 웃지 못할 일들도 많이 겪었다. 학우들 중에도 그런 친구들이 제법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중 내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 하나 있다. 1989년, 그러니까 대학교 4학년 여름 때였고, 8월이었다. 그 해에 나는 행시 1차에 합격했는데, 2차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 기억에 8월 초로 예정되어 있던 2차 시험은 참가해서 분위기를 보는 데에만 의의를 두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이런 배경 하에서 7월 말에, 정확히는 1989년하고도 7월 27일로 기억을 하는데,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가장 친한 그야말로 불알친구들과 동해안으로 놀러가기로 했다. 근데, 혹시 기억하는 친구가 있을 지 모르겠는데 그 날은 비바람이 심하게 부는 가운데 전국적으로 큰 인명사고가 많이 난 날이었다. 룰루랄라 놀러가던 내 친구들 4명은 강원도 홍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쉽게 얘기하면, 운전 3년 차 정도에 접어든 친구녀석이 자만감에 빠져 친구들을 몽달귀신 만들 뻔한 사고였다(엄청 미끄러운 빗길+커브길+반대차선으로 들어가 추월하다가 차가 제어가 안 되어 논에 빠졌음.) 차는 폐차되었으나, 어찌어찌 친구들은 아직까지 다 살아있다(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수 있으니 친한 친구를 경계할 것).
이건 쓸데없는 서론이자 배경설명이고, 이 사고를 통해 난 "사는 게 과연 무엇인가?"라는 원시적인 질문에 다시 빠져들었고, 이 사고후 병원에 있던 나는 행시 2차를 하루만 치르고 여수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여수, 부산 등지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나흘만엔가 부산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 무렵 나의 무대인 신촌거리에 도착을 했다...
정확한 술집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신촌에는 Rock Cafe가 몇 개 있었다. ZZ Top이라든가 Van Free Bird라든가...(필지 주 : 얼라들 와서 춤추는 Rock Cafe가 아니라 헤비메탈이니 하드락이니 하는 무자게 시끄러운 음악 틀어주는 그런 곳임)... 그 곳에서 홀로 술을 마셨다. 주로 떼거리로 몰려 다니며 술을 마시던 스타일이었으니까 낯선 경험이었음을 틀림없었을 것이다. 근데, 이게 기분도 엄청 꿀꿀한데다가 대작하는 놈이 없으니 속도조절이 안 되는 거다. 그래, 내 기억으로 천칠백 짜리 피쳐 다섯 잔을 마시고 있으려니까...(시간은 12시가 거의 다 되었을 것이다.)...주인 양반이 안 되 보였던지 술친구를 하나 소개해 주는 것 아닌가! (여자 아니다, 얘들아!) 연대 공대 무슨과 대학원생이라고 그랬던 것 같고 이름, 얼굴, 키 등 일체 생각이 안 난다. 그런데도 둘이는 뭐라고 뭐라고 얘기를 하면서 술을 좀 더 마시고, 급기야 의기투합하야 2차를 가기로 결정을 하고야 말았다.
알다시피 당시 ZZ Top있는 동네에서 동교동 방향으로 진행을 하면 창전국민학굔지 창천국민학굔지하는 곳이 있고 거기에 포장마차들이 포진을 하고 있었다. 나의 기억상 거기서 소주를 먹다가 청하를 먹다가 하다가 내가 화장실에 갔다오마 하고 일어섰다. 그리고서 필름이 잠시 out.
"어이, 학생, 일어나..."하는 반복되는 소리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보니 왠 낯선 아저씨 한 분이 모자를 떠억 쓰고 나를 보고 있었다. "아, 여기서 자고 있음 어떡하나..." 아저씨의 걱정어린 말소리...인생은 따뜻한 거여...이런 생각도 잠깐.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 화장실에 왔었지... 그래, 그곳은 현재 그레이스 백화점 뒤쪽에 있는 놀이터에 있던 공중화장실이었던 것이다.
둘은 관리사무소(이게 맞는 표현인지...)로 갔다. 그런데, 아저씨가 충격적인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보게, 변기 뚜껑이 깨졌어...자네가 깬 것 같아..." "어떡하죠?" "물어내야지." 나는 찬찬히 살펴보았다. 내가 갔고 있던 가방은 없었다.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동전 몇 푼이 쥐어질 뿐이었다. 손목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내 생일선물이라고 형이 사준 것인데...할 수 없었다. 풀어서 건내며, "아저씨, 지금 제가 지갑이 안 보이거든요...이따가 와서 찾아갈 게요."
그리구서 나는 놀이터를 떠나 신촌문고가 있는 큰 길 쪽으로 갔다. 해가 부옇게 밝아오고 있는 걸로 봐서 새벽 대여섯시는 된 것 같았다. (한 세 시간 쯤 잤구만!) 나는 생각도 없이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잡아서 탔다. 그런데, 나를 보는 기사양반의 눈빛이 다소 이상한 것 아닌가? 쩝...뭘 야려요, 아저씨...라고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성산동. 신촌에서 성산동은 그 당시 한 천원 정도쯤 나왔던 것 같다. 그러나, 주머니를 뒤져보니, 동전 4백원쯤과 달랑 토큰 하나가 만져지는 것이 아닌가! "저, 아저씨..." "알았어요, 어서 내리슈..."
내렸다. 사람들이 아직 오가지 않는 길을 걷다가 문든 내 꼴을 보았다. 녹색 티셔츠 위에 남은 오바이트 자국... 갑자기 "아이, 더러워..."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셔츠를 벗어 하늘 높이 던져버렸다. 길 가의 집으로 골인이 되었다.
집에 들어와서 바로 쓰러져 잤다. 그러나, 바로 노오란 위액인지 쓸개즙인지 하는 것이 자꾸만 파도처럼 끝도없이 반복해서 밀려나오는 것이 아닌가. 몇 시간을 헤매다가 잠이 들고, 거의 저녁이 되어 일어났다. 형의 시계 생각이 났다. 생일선물...찾아와야 해...라고 생각하며, 동네 친구에게 전활 걸었다. 운전했던 바로 그 놈에게... 집에서 150미터 정도 떨어진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150미터 이동하는 데 30분 정도 걸렸다. 너무 힘이 들었다. 친구에게 그 당시 잘 나가던 포카리 스웨트 하나 사다 달라고 했다. 그럼 힘이 날 것 같다고... 마시고, 즉시 다 토해버렸다. 집으로 돌아갔다. 거의 친구에게 몸을 맡긴 채.
인간의 몸이란 정말 신기한 물건이다. 그 다음 날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아났다. 모래내로 나갔다. 놀이터의 변기는 사기로 된 것인데, 가격을 물어보니 제법 비쌌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은 훠얼씬 쌌다. 오냐, 8천원을 주고 플라스틱 변기 뚜껑을 샀다. 왼쪽 겨드랑이에 단단하게 끼고 버스에 올랐다. 사람들의 눈길이 약간 요상했다. 허어, 이상하다, 변기뚜껑 첨 보나... 아저씨에게 뚜껑을 전달하고 시계를 되찾았다.
이게 끝은 아니다만, 이 사건은 결코 잊혀지질 않는다...너무 더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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