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토로그


삶의 찬가, 말러 <아다지에토>(2022. 11. 12.) 作家의 꿈, 땡제이의 꿈


(삶의 찬가, 말러 <아다지에토>)
상쾌한 아침 맞으셨는지요? 가족들이 각자 일보러 나간 돈암동 집에서 혼자 토요일 아침 시간을 맞고 있습니다. 음악 들으며 맞는 토요일 아침, 저로서는 행복의 시간이 아닐 수 없네요.
어제 경제과 동기와 저녁을 함께 했는데, 이 친구가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하더군요. 노후의 기쁨을 위해서요. 나는 내 노후의 기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질문을 해 볼 만한 나이도 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음악과 관련해서 무언가 하나는 하긴 할 것 같습니다. 알바로 음악다방 디제이 하는 것도 대안의 하나겠지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1. 삶의 찬가, 말러 <아다지에토>

<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 한 곡 선곡하기 시즌4>를 이어갑니다. 이채훈 <1일 1페이지 클래식 365>에서 말러의 <아다지에토>를 소개한 내용 전해 드립니다.

--------------------------------
1996년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삶의 찬가>. 러시아의 피겨 여왕 에카테리나 고르디에바의 손짓 하나, 몸짓 하나에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어려 있다. 말러의 <아다지에토>가 흐르고 있다. 관객 모두 눈물을 흘렸고, 그녀도 눈물을 흘렸다. 공연이 끝난 뒤 그녀는 말했다. "세르게이가 함께 스키를 타는 것 같았어요. 세르게이가 곁에 있어서 두 배로 힘을 낼 수 있었어요."

세르게이 그린코프는 고르디에바의 모든 것이었다. 1984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에서 우승할 때 세르게이는 15살, 고르디에바는 11살이었다. 그들은 1988년 캘거리,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 올림픽과 네 차례의 세계 선수권 대회를 석권했다. 고르디에바는 해가 갈수록 키가 커졌고, 그와 비례하여 세르게이에 대한 사랑도 자라났다. 1988년 새해 축하 공연에서 첫 키스를 나눈 두 사람은 1991년 드디어 결혼했고, 이듬해 딸 다리야가 태어났다. 두 사람은 행복했고, 세상은 그들의 것이었다.

세르게이의 죽음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1995년 11월 뉴욕 플래시드 호수에서 연습하던 중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르게이는 28살, 고르디에바는 24살이었다. 고르디에바는 그가 없는 세상을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왜 여전히 살아 있는 걸까? 세상은 어째서 그대로 돌아가고 있을까? 망연자실한 채 쓰러져 있던 그녀는 석달 뒤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서 빙판 위에 섰다. 죽은 남편에게 바치는 공연, 말러의 아름다운 <아다지에토>는 고르디에바의 <삶의 찬가>로 찬란하게 되살아났다.
---------------------------------------

2. 들국화, 사노라면

타인들이 나를 어떻게 알겠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떤 때는 나를 꿰뚫어 본 듯한 남의 말에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나더라 너무 재지 말고 좀 질러 보라고 말하던 동료 생각이 납니다. 문제는, 그게 합당한 처방일 수 있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잘 못하는 사람으로 굳어져 있다는 것이겠지요. 사실, 좀 덜 재고 저질러 버려도 별 큰일 안 나는 게 세상인데 말이죠.

--------------------------------------
남들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수도(2019. 11. 12.)
불확실해도 달려들고, 낙관주의자가 되라. 너무 신중하지 마라.
타인들이 나에 대해서 뭘 알어? 이리 생각하다가도, 어떤 계기에 보면,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나를 너무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소름 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게 사람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IFAD에서 다면평가 비슷한 걸 도입하려고 시범 적용을 하고 있는데, 나의 세 가지 개선할 점으로 supervisor가 이렇게 썼다. 1) Courage to tackle despite uncertainty. 2) Being an optimist. 3) Avoid being overly serious.
세 마디 권고의 요체는 좀 불확실해도 잘 되리라 생각하며 일단 저질러도 보면서 살라는 것 같다. 내가 제일 못하는 부분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생각나는 대로 저질르면서 살아도 괜찮다는 얘기를 해 준 예전 동료 생각이 났다. 아무튼 이 충고를 받아들인다면, 저지르고 볼 일인데, 무슨 일을 마주치면 항상 나는 '한 번 생각해 보자..'로 시작한다.^^
----------------------------------------

3. Paul Anka, I don't like to sleep alone

2012년 3월 고위공무원단 승진한 이후 계속 지방근무(로마는 해외지만)를 했습니다. 절반 정도의 시간은 아내가 근무지에서 같이 살고, 반 정도는 저 혼자 살았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익숙해진 편이지만, 그래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 밥 챙겨 먹으며 스스로를 건사하는 게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이제 좀 익숙해졌다 싶은 정도 되니까, 이렇게 지내야 하는 날이 별로 많이 남지 않았네요. 로마에서도 꽤 오래 혼밥을 하다가 언젠가부터 매일처럼 밥 같이 먹는 친구가 생겨 좋았었습니다. 그 놈의 밥이 뭔지 싶습니다.

----------------------------------------
혼밥의 기억(2019. 11. 12.)
D-94일. 세칭 주말과 휴일, 휴가를 제외한 ‘알다마’로 계산하면 딱 50일쯤 남은 날, 변함없이 Shankar와 점심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변함없이’라고 표현했지만, Shankar와 점심을 함께 하기 시작한 게 불과 1년 전이고, 그 전 1년 몇 개월 동안에는 점심 때마다 내가 그토록 힘들어하는 혼밥을 해야 했다. 우연찮게 Shankar와 밥 친구가 된 것인데, 나는 나랑 밥 같이 먹으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해 주는 그가 정말 고맙다. 조직의 여러 사람들과 두루 어울리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하기는 쉽지만, 나같은 성격에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Shankar는 내겐 귀인인 셈이다.
Shankar는 아시아 국가들 중에 안 가 본 나라가 거의 없는데, 이번에 워크샵 행사로 한국에 처음 가게 되는 것이라며 기대된다고 한다. 나는 혼자 하는 해외여행을 처음 가게 되던 때 뭐가 잘못 될까봐 몹시도 힘들어 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는 매사가 그렇다. 새로 접하는 일은 설레임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그래서 힘들다. 힘들게 살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