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토로그


라벨의 볼레로(2022. 11. 22.) 作家의 꿈, 땡제이의 꿈



(라벨의 <볼레로>)
상쾌한 아침 맞으셨는지요? 계절이 겨울로 직진하다가 겨울 입구 근처에서 잠시 멈칫거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를 만나게 되지만, 행복하려면 '문제(상황)' 자체를 사랑하라던 문구를 생각해 봅니다. 그걸 실천에 옮길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1.Maurice Ravel, Bolero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 한 곡 선곡하기 시즌4>를 이어갑니다. 오늘은 이채훈 <1일 1페이지 클래식 365>에서 라벨의 <볼레로>를 소개한 내용 전해 드립니다.

----------------------------------
<볼레로>가 파리 오페라에서 1928년 11월 22일 초연됐을 때 라벨은 프로그램 노트에 이렇게 썼다. "스페인의 한 술집, 천장에 매달린 금속 램프 아래 사람들이 춤을 춘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한 여성 무용수가 기다란 테이블 위로 뛰어 올라가 춤을 춘다. 그녀의 스텝은 점점 더 격렬해진다."
러시아의 무용가 이다 루빈슈타인의 위촉으로 작곡한 이 곡은 매우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4분의 3박자 리듬을 드럼이 끝없이 연주하고, 플루트가 제시하는 첫 주제도 끝없이 반복된다. 똑같은 리듬과 선율은 악기를 달리하여 끝없이 나타난다. 피아니시모로 시작해서 포르티시모로 끝나므로 전체가 '크레센도'로 된 곡이다. 18분 동안 커져 가던 사운드는 마침내 마지막 포르티시모에서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채 엉켜서 쓰러져 버린다.
연주 시간 18분, 리듬도 선율도 화음도 끝까지 똑같은데 도대체 어떤 요소가 있어서 음악이 될 수 있다는 말일까? 점점 더 큰 소리로 엑스터시를 유발하는 게 이 곡의 요체일까? 중요한 것은 악기 편성, 즉 음색이었다. 그때까지 나온 관현악곡 중 색채 변화만으로 이뤄진 곡은 <볼레로>가 처음이었다. 초연은 성공이었고, 이 곡은 가장 유명한 클래식 반열에 올랐다. 흥분한 청중들의 환호 속에 한 여성이 외쳤다. "작곡가가 미쳤나 봐요!" 라벨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 곡을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군요." 그는 훗날 말했다. "나는 걸작을 단 하나 썼다. <볼레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곡에는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곡은 오직 색채만으로 승부를 건 '최초의 색채 음악'이다.
------------------------------------

2. 김동률, 기억의 습작(<건축학 개론> OST)

영화나 드라마를 본 뒤에 주연은 생각이 가물가물하고 조연은 확실하게 기억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축학 개론>에서 남자 주인공의 친구인 조연으로 나온 조정석이 그랬습니다. 극중에서 어찌나 언행이 웃기던지요.
-----------------------
납득이(2019. 11. 22.)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건축학개론>을 유튜브에서 다시 보았다. 보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남자 주인공 승민의 연애 코치 역할을 하는 재수생 '납득이' 캐릭터는 지금 봐도 웃음이 났다.
여주인공 서연의 생일날 기차레일 위를 걷다 떨어지면 손목 때리기 하는 내기를 서연이 제안해서 했다며, 손도 막 만지고 해야 하는데 보통 사이에 하는 거 아니지 않냐며 의미 부여하는 승민에게 꿈 깨라고 납득이가 날린 한 마디가 너무 웃겼다.
"야, 이 븅신아, 그럼 아구창 날리냐?"
-----------------------

3. 푸른 하늘, 자아도취

자아도취에 빠져서는 안 되겠지만, 자신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은 행복을 위한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3년전 오늘 딱 그런 내용의 책 구절을 메모해 두었네요.

-----------------------
나를 사랑하라(2019. 11. 22.)
이 책을 읽으면 이 책 내용이 내 얘긴 것 같고, 저 책을 읽으면 저 책 내용이 내 얘긴 것 같고, 이런 심리적 문제에 대한 글을 읽으면 그게 내 문제인 것 같고, 저런 심리적 문제에 대한 글을 읽으면 그게 내 문제인 것 같고.
전형적인 팔랑귀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제 훑어 본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책과 오늘 훑어 보고 있는 <완벽의 추구>라는 책에서 공통적인 주장을 찾았다. 바로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라"는 얘기다.
정말 나는 남 이전에 나를 사랑하기나 하는 걸까. 아무래도 사랑해야 할 것 같다. 같은 책을 훑어봐도 꽂히는 부분은 항상 조금씩 차이가 난다. 요즘에는 '자기애'에 은연중 꽂혀 있나 보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괴롭히는 자는 다름 아닌 나였다는 생각은 오래부터 해 왔는데, 스스로를 괴롭히는 마음을 비우고 사랑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대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한다.
탈 벤-샤하르의 책 중에서 자기 자신에게는 왜 타인에게 요구하지 않는 턱없는 기대를 하는가 하는 부분은 정말 공감이 간다.
[ 나를 사랑하는 것이 먼저다
- 완벽의 추구, 탈 벤-샤하르 -
"우리 자신에게 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지말라"고 가르치는 황금률은 세속적이거나 종교적이거나 거의 모든 도덕규범에 포함되어 있다. 황금률이 걱정하는 것은 우리 이웃이다. 그러면 우리 자신에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황금률은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을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 자신을 대하는 방식을 이웃들을 대하는 방식의 기준으로 삼았을 뿐이다.
자신을 사랑하듯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황금률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며 자기비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간적인 약점에 대해서는 좀처럼 비난하지 않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다이앤 애커먼이 지적하듯이 우리는 아무도 완벽해질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이 완벽해지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자신은 완벽해지기를 바란다. 어째서 우리는 이웃에게는 관대하고 우리 자신에게는 엄격한 이중 잣대를 갖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우리의 도덕규범에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을 우리 자신에게도 기대하지 말라"는 새로운 규칙, 백금률을 추가할 것을 제안한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에 비추어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터무니없이 엄격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당신은 배우자가 완벽하지 못한 강의를 한다고 그를 비판하는가? 친한 친구가 시험을 망쳤다고 해서 친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딸이나 아버지가 어떤 경쟁에서 일등을 하지 못했다고 그들을 덜 사랑하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뭔가 잘못했을 때는 종종 스스로 못난이나 실패자로 여긴다.
달라이 라마와 그의 제자들은 서양 학자들을 만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서양인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혐오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티베트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자신에게 인색하고 이웃에게 관대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달라이 라마는 말한다. "티베트 전통에서 동정심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베푸는 마음가짐이나 태도다." 동정심의 대상이 정말 나 자신이 될 수 있는지를 묻자, 달라이 라마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 자신이 먼저입니다. 나를 받아들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차원 높은 동정심은 이기심이 발전한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혐오가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동정하기 어렵습니다. 동정심이 뿌리내릴 수 있는 터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략)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아인 랜드의 표현을 빌리면, 누구든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