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시간 : 2022/12/0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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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상쾌한 아침 맞으셨는지요? 오늘 새벽은 좀 덜 추운 것 같아서, 오랜만에 기지제 한 바퀴 가볍게 돌고 들어와서 출근 준비를 합니다.
전생과 내생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더군요. 전생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보려면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것을 보면 되고, 내생에 내가 무엇을 받을 지 보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된다고요. 그런 얘기를 읽은 탓인지, '업보'에 대해 어느 날 아래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업보.이 한 마디로 인생이 설명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지은 업의 과보를 달게 받는다. 그럼 된다. 겨자 씨를 심고 사과를 기대하면 안 된다. 나의 현재는 내 과거의 업보이고, 내 미래는 내 현재의 업보이다.]
1.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 한 곡 선곡하기 시즌4>를 이어갑니다. 오늘은 이채훈 <1일 1페이지 클래식 365>에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소개한 내용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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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토르 베를리오즈(1803~1869)의 불같은 성격은 그가 프랑스 혁명의 아들임을 증명한다. 1830년 7월 혁명, 유탄이 날아와 작곡가의 창가를 두드렸다. 로마대상에 출품할 칸타타 <사르다나팔루스>를 막 완성한 그는 거리로 나와 '성스런 시민들'과 함께 총을 들고 새벽까지 구호를 외쳤다. 자기가 작곡한 <천사의 찬가>를 시위대가 부르자 덩달아 함께 부르기도 했다.
혁명의 열기 속에서 베를리오즈는 혁명보다 더 뜨거운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 당시 파리에서 세익스피어 연극에 출연하고 있던 영국 여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그녀와 결혼할 것이다. 그녀의 연극을 바탕으로 대교향곡을 쓸 것이다." 하지만 인기 절정의 스미드슨은 무명 작곡가 베를리오즈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활기를 잃고 시름시름 환각에 빠진 그는 거리와 들판을 배회했다. 주체할 수 없는 갈망 속에서 탈진한 그는 <환상 교향곡>을 쓰면서 서서히 되살아날 수 있었다.
'꿈과 열정', '무도회', '들판에서', '교수대로의 행진', '마녀들의 축제' 등 5악장으로 된 <환상 교향곡>에는 해리엇의 음악적 이미지가 되풀이 나오는데, 이 주제를 베를리오즈는 '강박관념'이라 불렀다. 1830년 파리에서 초연할 때 당연히 해리엇은 불참했다. 하지만 2년 뒤인 1832년 12월 9일 다시 연주할 때는 친구들이 그녀의 등을 떠밀어서 연주회장에 데려왔다. 그녀는 이 멋진 교향곡의 주인공이 자기라는 걸 깨닫고 크게 감동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 결혼했는데, 그와 동시에 '환상'도 깨져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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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영광을 잃고 상심하고 있던 해리엇은 이 놀랍고 기괴한 교향곡이 자신을 모델로 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자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베를리오즈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베를리오즈 역시 해리엇과 재회하자 소시적의 연정이 되살아났다. 베를리오즈가 평생 똑똑히 기억했던 날짜인 1832년 12월 9일을 기점으로 둘은 본격적으로 사귀게 된다.
이제 상황이 바뀌어서 베를리오즈는 떠오르는 젊은 작곡가가 되었고 해리엇 스미드슨은 내리막길에 있었지만 베를리오즈에게 그런 세속적인 사항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양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 사람은 1833년 10월에 결국 결혼을 강행한다.[12] 그리고 이듬해 8월 두 사람은 유일한 아들 루이 베를리오즈(Louis-Clément-Thomas Berlioz)를 낳는다.이렇게 어렵게 결혼을 했으니 이제부터라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았을텐데......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혼 초기 빚에 쪼들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갖고 있던 환상은 금세 깨어져 버렸다. 그나마 처음 몇년간은 큰 풍파 없이 지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가 쇠락하면서 퇴물 배우가 되어 버린 해리엇은 잘나가는 남편에 대해 점점 집착하기 시작했다.[13]둘 모두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자주 싸움이 벌어졌고 해리엇의 의부증에 가까운 집착에 질려버린 베를리오즈는 점차 그녀를 멀리하게 된다. 베를리오즈가 스페인 출신의 여가수 마리 레치오(Marie Recio)와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서 베를리오즈와 해리엇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탄을 맞게 되고, 결국 1843년 두 사람은 이혼하고 아들 루이는 베를리오즈가 키우게 된다. 이후 해리엇은 알콜중독에 시달렸고 파리 근교에 살다가 1854년 쓸쓸하게 죽었는데, 비록 이혼을 했지만 베를리오즈는 해리엇에게 평생 생활비를 지원해 주었으며 종종 그녀의 집을 방문하였다. 1848년 그녀가 심장병으로 쓰러진 후에는 치료비와 간호비도 모두 부담했으며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재혼도 하지 않았다. 비록 이혼은 했지만 인간적인 도리는 다 했던 것.]
2. Freddie Aguilar, Anak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이런 가사로 7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번안이 되었던 곡이죠. 아들내미 생각하면 항상 이 노래가 먼저 떠오릅니다. 성별의 차이인지, 그냥 개인적 성향의 차이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내와 내가 아들내미를 바라보는 관점이 참 다릅니다. 나는 지가 알아서 잘 클 테니 그냥 놓아 기르자는 편이고, 아내는 애가 엇나가지 않도록 이것저것 가르치고 훈육도 해야 한다는 편입니다. 두 견해는 평생을 같이 살아도 수렴하지 않고 평행선을 달린다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아들내미 스물여섯 어엿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큰 탈 없이 성장하고 있는 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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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업 논쟁(2018. 7. 13(금))
여름방학을 맞은 명수가 7월 24일 로마로 온 이후, 거의 하루도 안 쉬고 명수와 명수 엄마 간에 말다툼이 일어난다. 나는 중간에서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불만을 들어주는 창구가 되어 있다. 명수 엄마는 명수가 한국 가서 다시 사춘기가 되서 돌아온 것 같이 자기만 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명수는 명수대로 엄마가 대화가 안 된다고 불만이다.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부터 명수가 이태리 물건 중에 한국에서 장사가 될 만한 물건이 뭐가 있는지 이런 저런 품목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며 엄마랑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내가 설겆이감을 옮기고 있는 사이에도 그런 대화가 이어지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나는 발코니로 나가 여유있게 담배를 피우고서 해 저물어 가는 모습을 보고 앉아 있었는데, 명수가 얼굴이 굳어져서 빼꼼 빨코니 문을 열고 들어서더니 의자에 앉으며, "아빠, 엄마랑은 대화가 안 돼요." 이런다.
'또 싸웠구나..' 생각하며, "왜, 무슨 얘기했는데?" 물었다.
"아니, 내가 무슨 장사를 하겠다고 정한 것도 아니고 생각만 하면서 이것 저것 물건에 대해 알아보고 그러는데, 엄마는 아직 발걸음도 안 뗀 데다 대고, 그건 위험하니까 하지마! 그러는 거예요.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요 며칠 왠지 몸과 마음이 피곤한 나는 길게 얘기하기가 귀찮았지만, 아들내미가 말을 걸어왔으니 대화를 하지 않기도 곤란했다.
"아빠 생각은, 무슨 일을 하든 너의 시간과 에너지, 힘이 들어가고 하니까, 네 역량과 상황을 감안해서 신중하게 판단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장사라는 게 학원 알바하는 것과 다르게 품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고 신경을 많이 써야 되는 거니까 걱정도 되고."
"아니, 그럼 아빠도 시작하기도 전에 무조건 그런 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도 저 나름의 생각이 있다구요. 사실 학교 공부는 보니까 행정학이라는 게 재밌는 내용도 아니고 나중에 직업생활을 할 때 그 내용을 꿰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더라구요. 나중에 취업하거나 혹시 로스쿨 진학할 때 대비해서 학점 관리만 잘 해 놓으면 되는 것 같은데, 제가 잘 하고 있잖아요. 진로에 대해서는 아직 마음 속에 정한 게 없는데 제가 start-up을 할 수도 있고 장사를 할 수도 있는 거죠. 소액으로 장사 경험을 해 보는 게 행정학 교과서 내용보다 오히려 실제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훨씬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아직 해 보겠다고 정한 건 아니지만. 근데, 엄마는 부모가 스폰서니까, 돈 대 주는 사람 말 무조건 들어라 이런 식이라구요. 예를 들면, 제가 휴학하고 인턴사원한다 그러면 부모님 허락 받아야 하나요? 솔직히 저는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부모님와 의논은 하겠지만 허락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구요. 저도 스무살 넘은 성인이쟎아요."
"학생들이 장사하고 그런 경우도 많이 있니?"
"꽤 많아요."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엄마랑 아빠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인터넷이 있거나 해서 학생들도 쉽게 정보를 구하고 그런 세상이 아니었쟎니? 그리고 엄마나 나나 부모 말씀 잘 듣는 범생이였고. 그 당시에는 학생들이 물건을 떼다 장사하고 그런 일은 잘 없었으니까, 그런 경험치가 없지. 어쩌면 세대와 상황의 차이, 사람의 성향 차이 문제인 것 같다. 글쎄, 나는 네가 경험도 쌓을 겸 그런 일을 해 보는 건 너 스스로가 너의 역량과 에너지, 상황 등을 감안해서 스스로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부모님 입장'이 어떻냐고 합의된 입장을 달라고 하면 엄마랑 상의해서 결론을 내겠지만, 내 개인의 생각은 그래. 아무튼, 엄마랑 싸우지는 말고, 대화해 봐."
"엄마는 대화가 안 되요. 그래도 아빠는 끝까지 들어주시쟎아요. 근데, 엄마랑 얘기하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해요. 우리가 부모니까, 학비 대 주고 용돈 대 주니까, 내 말을 무조건 들어라, 이건 하지 마라 저건 하지 마라 하는 식이예요. 자기 입장에서 원하는 것만 하라는 식이예요. 그게 짜증나요."
"아무튼, 내 입장은 얘기했고. 너도 그걸 하겠다고 아직 결정내린 것 아니니까 천천히 대화할 기회를 찾아 봐."
발코니 문을 열고 마루로 들어가려는데 명수가 묻습니다, "아빠, 어드바이스 하나 주세요. 엄마랑 지금 얘기하는 게 좋아요, 나중 얘기하는 게 좋아요?"
"그냥 오늘은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조용히 자. 그리고, 천천히 대화할 기회를 찾아 봐."
아침을 먹는데 명수 엄마는 명수 엄마대로 명수에 대한 불만을 이어갑니다. 다시 사춘기가 된 거 같어, 자기 밖에 몰라, 부모가 용돈도 주고 해서 여유를 만들어 주면 뭔가 쉬기도 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든지 해야지, 장사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있는 친구들의 예를 보며 거기에 관심 가지면 품도 많이 들고 복잡한 일인데 말을 안 들어 하면서요.
출근 길에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명수에게, "아빠 다녀올게. 싸우지 말고 대화로!" 하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불같은 명수와 명수 엄마 성격상 틀림없이 이 문제로 오늘도 언성 높은 대화가 오갈 것으로 상상이 됩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제 자식이 돈에 대한 관심이 나보다 높을 수도 있고 이런 저런 기회를 찾아보려 할 수도 있고, 그런 과정에서 경험을 많이 쌓을 수도 있고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경로로 삶을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어쩌면 인생이죠. 아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 기본적으로 지지합니다. 다만, 아내가 걱정하듯이 장사라는 게 머리 쓰고 몸 쓰고 마음 쓸 일 많아 학업을 하면서 병행하는 게 쉽지 않고 힘이 들 거라는 게 신경쓰이는 거죠. 아내와 저의 생각이 다른데, 그걸 조율하는 게 더 문제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합치된 의견으로 그건 별로다라고 얘기해도 아마 명수는 자기 나름대로 시도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 생각엔, 하고 싶은 일은 해 보고 실망이든 후회든 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재다가 아무 것도 못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싶습니다. 실패한 대한 두려움을 넘어 도전하는 것, 젊음의 특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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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선희,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김종철이 인생에서 제일 잘 한 건 명수엄마하고 결혼한 거다!' 라고 말하는 지인들이 좀 있습니다. 뭐 딱히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고 굳이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잔소리 조금 하는 거만 빼면 내 아내가 최고라 생각합니다만, 잔소리는 아내와 불가분의 속성이라고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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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려는 자, 지키려는 자(2018. 12. 9.)
일요일 늦은 오전 아내와 둘이 동네공원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오니, 청소에 돌입한 아내는 쓰레기를 버려 달란다.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와 목욕탕에 손을 씻으러 들어가는데, 아내가 찾는다, "여보, 이리 좀 와 봐!"
"왜?" 하며 안방으로 가 보니 침대 위에 콤비 자켓 몇 점과 잠바, 바람막이, 바지, 조끼와 폴라티를 비롯한 윗도리들을 쌓아두고 좀 찡그린 표정으로 보면서 말한다, "옷 좀 버리게. 옷장 안이 입지도 않는 옷들로 꽉 차 있어서. 옷장 한 칸만큼만 있어야 되는 건데."
'일요일날 뒹굴게 놔두지 뭘 옷을 정리한다고. 놔두면 입는 건데, 귀찮게.' 이런 생각이 0.01초 사이에 머리 속을 휘젓고 돌아가니 나는 자동으로 좀 머뜩찮은 표정을 지었다.
"자기 이 자켓들 올해 한 번이라도 입었나? 올드해서 한 번도 안 입은 것 같은데, 버리자."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걸치고 있던 패딩을 벗고 자켓 중의 하나에 팔을 꿰기 시작했다. 아내는, "입어 보지 말고! 안 입잖아."
나는 못 들은 척 자켓을 마저 입고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역시나, 지난 초여름에 입어볼까 하고 꿰어봤을 때와 같은 느낌, 팔이 지나치게 길고 색감이 시대에 안 맞는다는 느낌이 다시 들었다. 다른 두 자켓을 꿰어봐도 역시 다시 입게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버리자"
꺼내 놓은 옷들을 하나씩 입어 보고 버릴 지 여부를 결정했다. 오래 되어 입으면 진짜 아저씨 느낌이 나는 옷, 허리에 살이 쪄서 입기 곤란해진 바지같은 옷은 쉽게 버리는 걸로 정리가 되었지만, 허리와 별로 상관이 없는 윗옷들은 잠깐씩의 논쟁을 거쳐 버릴 지 여부를 결정하였다. 너무 오래 되서 아내가 꼭 버리자고 하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옷이어서 그냥 일단 두기로 한 옷도 한 두 벌 있고.
버릴 옷들을 넣은 종이 가방을 이민자들이 잘 뒤지는 쓰레기통 앞에 두고 집에 돌아왔다. 아내가 준비한 비빔면으로 점심을 먹으면서도 옷 버리기에 대한 논쟁은(실상은 아내가 거의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것이었지만) 이어졌다. 아내는 오래되어 입지도 않으면서 옷장 구석에 손길도 안 가면서 걸려있는 옷 같은 것을 "정든 쓰레기, 예쁜 쓰레기"라고 표현했다. 그런 걸 정리하지 않고 갖고 있는 것은 미련일 뿐이라고, 계절마다 해마다 정리해 줘야 한다며, 점심 다 먹고 나더니 내가 가진 옷의 실상을 보여주겠다고 안방으로 오란다.
"봐, 여보, 자, 이거 바람막이, 이거 바람막이, 바람막이, 바람막이, 바람막이, 바람막이, 바람막이. 바람막이만 일곱 개야. 바람났어? 어디 바람 맞으러 갈 때 입을라구 이렇게 바람막이만 많아?"
나는 아내 쪽으로 가서, 바람막이 하나씩 들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건 동생이 사 준 건데 아직 입은 적 없는 거고, 이건 자주 입는 거 봤지, 이거랑 이거는 입는 거 봤지?,,"
아내가 말을 가로막았다, "방어하지 말고 봐봐. 바람막이는 7개, 바람막이 안에 입는 집에서만 입는 옷 세 개, 입을 만한 양복 바지는 단벌, 남방은 네 벌 중 비슷한 색깔만 세 개, 그 남방들하고 똑같은 색깔 바지 면바지 두 벌, 이게 다야. 입을 게 없다구. 옷가게 가서 꿰어 보라고 해도 가질 않으니 그런 거야. 신발만 꽂혀서 신발에만 관심 갖고.. 멋지려면 옷을 적극적으로 입어 보고 사야지.."
그래, 지나간 물건에 미련 갖고 새 것을 찾지 않으니 멋내기 힘들긴 하다. 지나간 물건에 대한 미련은 옷장을 어지럽힐 뿐이지만, 지나간 일들에 대한 미련은 정신을 어지럽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니 한 번씩 대방출 정리하긴 해야겠다..아내에게 그렇게 말은 안 했지만, 당신 말이 맞다. 버리려는 자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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