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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의 바흐 무반주 모음곡(2022. 12. 11.) 作家의 꿈, 땡제이의 꿈


(세고비아의 바흐 무반주 모음곡)
상쾌한 아침 맞으셨는지요? 12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어제는 결혼식 참석, 아버지 생신 모임, 친구 부친상 조문으로 오후 내내 돌아다녔습니다. 주말에 그런 일정 없이 집에서 쉬거나 나만의 일정갖는 게 더 좋긴 합니다.
보통, 일요일 점심 먹은 직후에 버스로 전주로 가는데, 오늘은 저녁 기차로 내려가기로 해서 집에서 좀 여유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 한가로움을 누릴 수 있어 좋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1.세고비아의 바흐 무반주 모음곡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 한 곡 선곡하기 시즌4>를 이어갑니다. 오늘은 이채훈 <1일 1페이지 클래식 365>에서 세고비아의 <바흐 무반주 모음곡>을 소개한 내용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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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 기타', 귀에 익은 기타 제조업체의 브랜드 이름이다. 그럼 '세고비아'는 누구일까? 클래식 기타를 평생 연마해서 입신의 경지에 오른 안드레아 세고비아(1893~1987), 그는 연주의 달인일 뿐 아니라 기타를 어엿한 클래식 악기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는 낭만시대 기타 음악을 널리 보급했을 뿐 아니라 바로크 시대 음악을 기타곡으로 편곡하여 많은 음반을 남겼다. 그가 연주한 바로크 음악을 들어보자. 퍼셀, 스카를라티, 핸델, 프레스코발디 등 옛 거장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그의 손가락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그가 기타로 편곡해서 연주한 무반주 첼로모음곡 3번을 들어보자. 클래식 음악에 귀가 열리기 전, 첼로로 연주한 원곡은 별다른 화음 없이 구불구불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반면 기타 연주는 소리의 잔향이 분산 화음을 이루기 때문에 쉽게 감성을 건드린다. 그가 연주한 프렐류드는 신선의 독백 같았고, 알레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부레, 지그 등 춤곡들은 너울너울 춤을 춘다. 원곡은 C장조지만 기타의 특성에 맞게 A장조로 옮긴 곡이다.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를 기타로 편곡한 것도 있다. 이 어려운 대곡을 어떻게 기타로 편곡해서 연주했단 말인가?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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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동진, 행복한 사람

누군가 '행복'을 세잎 클로버에 행운을 네잎 클로버에 비유하면서, 행운을 찾아 다니느라고 지천에 널린 행복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럴싸한 비유란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행복해진다는 건 자기에게 주어진 것의 의미를 잘 알아보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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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메일이나 음악실(#땡칠음악실) 음악 올리기를 마무리할 때, 늘 '행복'을 거론한다.
'행복하세요!'라고 쓸 때도 있고, '행복한 날 되세요!'라고 쓸 때도 있고, 더러는 '행복한 날 만드세요!'라고 쓰기도 한다.
어떤 게 가장 좋은 표현인지 모른다. 밑도 끝도 없이 얘기하기는 그냥 '행복하세요!'라고 쓰는 게 좋다. 그게 행복해지겠다는 의지로 되는 건지 그 날의 운이 좋아서 행복해지는 건지가 불분명하지만 아무튼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마음만 분명히 전하는 것이니까.
'행복한 날 만드는 것'은 의지로 가능한 것일까, 오늘을 마무리하며 마음 속에 질문을 던져본다. 행복과 불행은 정말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행복과 불행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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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물원, 변해 가네

이 노래를 좋아하던(노래방 가면 늘 이 곡을 불렀던) 직장 동료 생각이 나네요. 변화와 일관성을 주제어로 생각을 해 보던 날이 있었습니다. 인간이란 변하는 존재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딴 사람이 된 듯 변화할 수도 있는 게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태어난 특성 안에서만 사는 게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변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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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을 지키는 가운데 변화, 변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일관성(2014. 12. 11.)
'일관성이 있다'는 말은 종종 '한결같다' 처럼 좋은 함의를 담고 쓰이는데, 그게 실은 어떤 경우 관성, 타성, 매너리즘으로 흘러갈 여지가 있다.
'변화'는 가치중립적인 말이지만, 종종 좋은 방향으로의 움직임, 개선을 표현하기 위해 쓰인다.
일관성과 변화라는 말이 서로 상극인 말은 아니지만, 종종 현실에서는 충돌한다. 일관성을 지키다 보면 변화의 의지가 없다고 하기도 하고, 변화를 시도하고자 하면 일관성이 없다, 꼴리는 대로 한다, 충동적이다, 뒤흔든다..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내가 더 추구하는 가치는 일관성인가 변화인가.
일관성을 지키는 가운데 변화, 변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일관성.
모순형용처럼 보이지만,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내 기질이나 성격의 일관성이란 것은..차분한 듯 하다가 똘아이고, 물인듯 하다가 불이다.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알관성'인 셈이다. 이런 이가 변화를 추구한다면, 그 변화도 일관성없이 울퍽질퍽할 수 있다.
아직 머리가 정리가 덜 되었나 보다. 그러나,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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