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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이, <무반주 첼로 소나타>(2022. 12. 13.) 作家의 꿈, 땡제이의 꿈


(코다이, <무반주 첼로 소나타>)
상쾌한 아침 맞으셨는지요? 간밤에 비가 조금 내려 유난히 더 차분한 아침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평가가 이어지는 연말, 한편으로는 평가를 받는 입장이 되었다고 한편으론 평가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가 하면서 보내는 날들입니다. 늘 부담스럽고 피해 가고 싶은 평가지만, 그 또한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이고 과정이니 당당하게 평가받고 정당하게 평가해야겠지요.
경제학은 '선택'을 설명하는 학문이라 하죠.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과와 파장을 달게 받아들이는 것에 관한 학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경제학 이상의 얘기겠죠.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1. 코다이, 무반주 첼로 소나타
https://www.youtube.com/watch?v=ytepXpkBOnY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 한 곡 선곡하시 시즌4>를 이어갑니다. 오늘은 이채훈 <1일 1페이지 클래식 365>에서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어찌 보면 작품보다는 연주자 야노스 스타커를 소개해는 데 중점이 있는 부분인 것 같지만요)를 소개한 내용 전해 드립니다. 연주의 대가들마저 무대공포증에 시달린다는 얘기가 남의 얘기 같지 않고 깊은 공감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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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라를 전공하는 서울예고 졸업반 학생이 무대공포증을 호소했다. 그는 입시 직전 마지막 실기시험을 봤는데, 무대공포증 때문에 중요한 시험을 망쳤다고 했다. 며칠 밤을 새워가며 연습한 게 단 6분 만에 날아갔으니 허탈하기 짝이 없고, 눈앞의 입시는 물론 앞으로 평생 연주자로 살아갈 일이 너무 걱정된다고 했다.

무대에 설 때 떨리지 않는 연주자는 없을 것이다. 그걸 기분 좋은 긴장으로 여기며 즐기는 연주자도 있지만, 혼자서는 잘할 수 있는 곡도 여러 사람이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면 몸이 굳어서 최상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적인 거장들도 무대가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파바로티는 긴장을 달래기 위해 주머니에 쇠못을 넣고 무대에 올랐다. 글렌 굴드는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자기 모습이 끔찍하고 비참해서 무대를 포기하고 스튜디오 리코딩만 했다.

첼로의 거장 야노스 스타커는 연주회 때마다 너무 떨려서 무대 뒤에서 술을 마시곤 했다고 한다. 특히 코다이의 무반주 소나타처럼 엄청나게 어려운 곡을 반주자도 없이 혼자 연주해야 한다면 얼마나 두려울까. 노대가의 얼굴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연습할 땐 실제 연주처럼, 연주할 땐 연습처럼!" 큰 무대에서 한 번 성공적으로 연주하고 나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작은 실패도 있겠지만 성공하는 날은 반드시 온다. 그 학생이 야노스 슈타커의 연주를 들으며 용기를 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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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asta Siempre
https://www.youtube.com/watch?v=VWXoQ3R0uKQ

역사의 인물에 대한 평가는 어차피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갈리게 마련이죠. 쿠바혁명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체 게바라의 인생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장관 자리를 박차고 다른 혁명 전선에 뛰어들었던 모습은 참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이념을 떠나 기득권이란 게 한번 맛 보면 그 달콤한 맛을 떨쳐 버리기가 어려운 일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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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유감(2018. 12. 13.)
어렸을 적 기억에 할아버지는 늘 책을 읽거나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사서삼경을 소리내어 읽고 계시기도 하고, 사기를 읽고 계시기도 하고, 단재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가는 붓으로 이것저것 적으시기도 하고, 아무튼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무조건 책이 연상이 된다. 그런 독서를 바탕으로 전우치전이나 서화담(서경덕)이 도술부리는 이야기, 토정 이지함 이야기 같은 우리 옛날 소설이나 야사같은 이야기도 해 주시고, 중국의 고사성어 유래도 가끔 얘기해 주셨던 것 같다. 그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국민학교 3학년을 마치고 4학년이 될 즈음에 수색국민학교에서 북가좌국민학교로 전학하던 날, 할아버지께서 수색국민학교에서 전출에 필요한 행정사항을 처리하시고 북가좌국민학교에 나를 전입시켜 주신 뒤, 남가좌동에 있던 헌책방에 가서 한 권의 책을 사 주셨다. 할아버지께서 골라주신 건지 내가 고른 건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계유정난 때 참살당한 김종서와 독립운동가 이상재의 위인전이 한 권에 수록된 책으로 기억한다. 내가 어릴 적 무척 책을 좋아하게 된 바탕은 할아버지의 독서하는 모습과 들려주신 옛날 이야기, 집에서 굴러 다니던 동국병감이니 뭐니 하는 우리나라 역사이야기나 중국의 역사서같은 것들을 접한 데서 시작되었다.
역사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중학생 정도부터는 자연히 '나는 역사를 공부할 거야'라는 생각을 품었다. 중학생 때 사마천의 사기나 김구용 선생이 엮은 열국지 같은 걸 읽을 때는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모른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1학년 때부터 대학교는 어느 학과를 지망하는 지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기 시작하는데, 당연히 나는 "역사학 하고 싶습니다." 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펄쩍 뛰면서 그러지 말라는 거다. 그거 해서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우습게도,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국사 과목 담당이었다. 그러려니 했는데, 2학년 때 또 상담을 했다. 당연히 나는 역사학 하겠다 했고, 교련 담당이었던 담임선생님은 마찬가지로 돈 안되는 전공 선택하지 말라고 말리셨다.
학력고사를 봤다. 점수가 나왔고, 응시를 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사학과 간다고 했고, 담임 선생님은 다른 분들과 똑같이 배고픈 학문 하지 말고 법학과를 가라고 권하셨다. '배고픈', '돈 안 되는', 이 말은 우습게 들리지만 내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말이기도 했다. 돈 없으면 인간 취급 못 받는 세상이란 건 뻔히 보이는데, 그럼 어쩌나 고민하다가, 경제학을 선택했다. 사실 알지도 못하면서 선택했다. 경제가 뭔지, 경제학이 뭔지 개념도 없으면서, '사람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냄새 나는 학문 아닐까?' 대충 그 정도 생각으로 경제학과로 진학했다.
대학교 들어가서 학과 공부 열심히 하지도 않았지만, 경제원론 과목 두 학기 수강하면서 받은 인상은 한 마디로, 내가 상상하던 것과 너무도 거리가 먼 학문이었다. '경제'의 어원이라는 '경세제민, 세상을 경영하여 백성을 도탄에서 건진다(혹은 그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한다'는 말이 주는 정치경제학적이고 복합적이고 치열한 느낌은 별로 갖지 못했다. '합리적 인간'이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가정부터 불편했다. 일단 내 자신이 그다지 합리적 인간이 아니니까, 근가정부터 마음에 와 닿지 않은 것이다. 학년이 더 올라가면서, 소위 주류경제학은 거의 수학에 가까와서, 수학과 안 친한 나는 참 힘들었다. 전공필수여서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했던 과목들은 수강했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한국경제사, 각국경제사, 경제학설사, 경제사상사, 경제정책론(고 정운영 교수님 강좌였는데, 내용은 소련 초기경제사였다) 같이 '역사' 과목을 열심히 들었다.
결국, 나는 경제학부를 졸업했지만, 경제학을 잘 모른다. 대학교 4학년 때 진로를 놓고. 행정고시를 보느냐 경제학과 대학원에 가느냐를 두고 얼마간 고민하다가 결국 행정고시를 보기로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경제학과 대학원 시험 안 친건 참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여전히 나는 숫자에 약하고 수리 모형을 돌리고 싶은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참, 대학교 때 교재나 노트도 2006년에 갖고 있던 책 다 처분할 때 함께 치워 버렸다. 그 이후 사들인 얼마 안 되는 책 중에서도 역사 관련된 책이 더 많고 경제학 관련 책은 거의 없다.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재경직으로 공무원에 입문해서 경제부처에 근무하고 있지만, 결국 나는 경제학에서 배운 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정도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날라리 경제학도다.
2지망인 동양사학과를 갔다면, 나의 인생궤적은 또 달랐을 것이다. 어쩌랴, 어떤 길을 가지 않음도 결국 내 선택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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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nimals, The House of the rising sun
https://www.youtube.com/watch?v=FrT5BT4zol0

Animals의 이 노래를 들으면 왠지 가난한 동네에서 살던 어린 시절 생각이 납니다. 사실 가사 해석이나 해설을 자세히 본 것도 아닌데, 제목부터 그런 느낌을 주는 곡이죠. 괜히 '달동네'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곤 해요. 코흘리개 시절부터 결혼 전까지 살던 동네 근방에 가면 하도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더라구요. 엄마가 장사하시던 모래내 시장도 얼마 전에 가 보니까 거의 다 밀리고 흔적이라 부를 정도의 점포 몇 개만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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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내시장이 사라진다(2018. 12. 13.)
막내동생의 페북 포스팅을 보니, 모래내시장이 없어진단다. 링크시킨 뉴스를 보니, 안전진단등급 E등급을 받아 상인들이 거의 다 떠나갔단다.
모래내시장이 없어진다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이상해진다. 기쁜 건 분명히 아니고, 그렇다고 눈물나게 슬플 것도 없는데, 뭔가 오래 갖고 있던, 그렇지만 별로 소중하다고 생각도 않고 그런게 있나 보다, 그거 원래 그렇게 있는 거지 하며 지내왔던 어떤 손때 짙게 묻은 물건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통고를 받은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1973년 일곱 살 때 홍은동에서 성산동 뚝방으로 이사온 뒤부터 1995년 스물 아홉 결혼해서 성산동을 떠날 때까지 우리 집은 몇 번 이사를 했지만, 다 모래내시장 이쪽의 성산동 아니면 저쪽의 남가좌동이었다.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 모래내시장은 어쩌면 성산동이라는 지명보다 더 내 생활의 중심지를 잘 대변해주는 지리적 명칭이었다. 단순한 장을 보는 곳이 아니라, 그곳은 우리 엄마가 장사를 하시던 곳이었고,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나의 불알친구들이 곱창볶음에 소주 한 잔 걸치며 우정을 쌓던 곳이었다.
점포를 마련할 자본력이 없던 우리 집안 형편상, 엄마가 시장의 통행로에 좌판을 펼쳐놓고 생선을 파시던 그 지점의 위치가 내 머리 속에 이미지파일처럼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다. 빨래하며 베었는지 내 옷에서 생선 비린내가 난다고 창피해 죽겠다고 얼마간 원망하던 기억도 나고, 설명절 대목에 포뜨기 위해 궤짝에서 엉켜있는 동태 떼어내는 조수 작업을 하며, 물 흥건한 바닥에서 발 시렵다는 말씀도 않고 열심히 포를 뜨시던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되니 속으로 미안해지던 마음도 생각이 난다.
엄마가 우리를 키웠지만, 모래내시장도 엄마에게 자리를 내줘 우리를 함께 키운 공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1940년에 태어난 엄마가 늙고 아파지신만큼, 1968년에 태어난 모래내시장도 늙고 아프게 된 모양이다. 모래내시장 용지가 어떤 모양으로 탈바꿈되고 어떤 용도로 사용될는 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물리적인 공간으로서 모래내시장은 사라질 것이다.
앞으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모래내시장, 어쩌면 엄마가 앉아 계시던 그 자리, 그곳에서 바라보던 장바닥 풍경, 시장 앞길 포장마차의 곱창에 소주 한잔이, 어떤 날엔 가슴 저미게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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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바이브, 술이야
https://www.youtube.com/watch?v=gKytiueZqpw

술을 사랑하여 늘상 술과 함께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 상황이란 게, 저만 맞이하는 게 아니겠지요. 막상 금주를 해 보니, 술이 없으면 못 살 것 같고 아무 재미도 없을 것 같았던 것도 그저 사실과 다른 상상에 불과한 것이긴 하더라구요. 그래도 가끔은 한잔 하면서 relax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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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금주자(Teetotaler)(2018. 12. 13.)
한국에 있는 후배랑 통화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이태리 있을 동안에 와인이나 많이 마시라는 후배의 말에 "나 술 끊었어." 했더니, 영어를 참 잘하는 이 후배가 절대금주자라는 영어표현이 있다며 알려준다, teetotaler.
술을 처음 입에 댄 게, 확실치는 않지만 중학교 1학년 아니면 2학년 겨울방학 때 외갓집 가서 내기 고스톱 치던 사촌형들 구경하다가 점방에서 술 받아오는 심부름한 값으로 얻어 마신 막걸리였던 것으로 기억하니, 음주의 역사가 시작된 지 37년 안팎인데, 절대금주를 권고받은 적이 두 번 있다.
10년 전쯤, 몸이 너무 쉬이 피로해지고 오후 되면 정신이 멍해지는 증상이 나타나 다니는 내과병원에 갔더니, 알콜성 간염이란다. 술은 마실 수 있느냐, 담배는 피워도 되느냐 물었더니, 죽고 싶으면 술 마시란다. 절대금주를 권고받은 셈이다.
4개월 정도 금주를 하는데, 한국의 직장생활이란 게 술자리가 좀 많은가. 어지간한 자리는 피하거나, 참석해도 물 마시며 버텼지만, 술 마실 땐 몰랐는데 술 안 마신 상태에서 사람들 술 마시고 점점 취해가면서 떠드는 걸 보고 있는 게 꽤나 고역이더라. 해서, 날이 바뀔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는 술자리에 있을 때 서너 번은 '딱 한잔' 신공을 익히게 되었더라. 다섯 시간이건 여섯 시간이건 간에, 마시는 술이 소주건 맥주건 위스키건 와인이건 간에, '딱 한 잔'만 마시며 버티는 인내의 신공이다.
그런데, 참 역설적이게도, 술을 마실 수 없고 마셔서는 안 되는 그 상황에서 일잔 신공을 익히면서 진실로 술이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지를 깨달았다. 그 이전까지 술은 통쾌하게 목을 열고 들이붓는 물건으로만 알고 살아왔는데, 한 잔으로 몇 시간을 보내려니, 딱 한 방울을 혀끝에 톡 떨어뜨리고서 그 맛을 음미하게 된 결과였다. 한 방울의 맛과 향이 혀끝에서부터 혀의 본체를 타고 목구멍으로 코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황홀한 느낌. 그것이 위스키이면 더할 나위 없지만, 맥주도 그 한 방울의 맛은 목말라서 벌컥벌컥 마실 때와는 전혀 다른 환희의 세계를 보여주고, 와인도 소주도 마찬가지다.
결국 나는 절대금주라는 의사의 권고를 충실하게 이행하지 못했지만, 딱 한 잔을 음미하는 연습을 통해 술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졌다고 봐야겠다.
내가 장기복용하는 약과 관련하여, 의사들이 술을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는 해 왔지만, 그냥 의사니까 하는 소리려니 하며 장 마시던 대로 마시며 살아왔다. 그런데 작년에, 의사가 아닌 아내에게 절대금주를 권고받았다. 내가 먹고 있는 약들의 부작용을 살펴 보던 아내가, 한 약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에서 "이 약 복용과 음주를 병행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문구를 발견한 것이다.
또 한 번 절대금주를 주문받았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지만, 문자 그대로 언제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알코올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는 의미의 Teetotaler는 아니다. 지난 9월에 여동생이 로마에 놀러 왔을 때, 그리고 11월에 처제가 놀러 왔을 때, 아내는 내게 '딱 한 잔의 맥주'를 허용했다. 사람의 몸이란 게 적응력이 어찌나 좋은지, 술 안 마시기 시작한 지 1년 넘어가니까, 그 딱 한 잔에도 취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인 조지훈이 서열을 매긴다면, 나는 술을 배우는 '주졸'의 단계에 입문하고 얼마 안 되어 공부를 중단한 사람이거나 , 아니면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마실 수 없는 '관주'의 단계로 넘어가 버린 사람이 되었나 보다. 단언컨대, 술은 인간이 발명한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의 하나다. 아쉬워라.
조지훈의 주도에 대한 등급 부여는 아래 글을 참고하시라.
(조지훈(趙芝薰)의 '술은 인정이라')
술을 마시면 누구나 다 기고만장하여 영웅호걸이 되고 위인 賢士도 안중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주정만 하면 다 주정이 되는 줄 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주정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酒歷과과 酒力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 주정도 교양이다. 많이 안다고 해서 다 교양이 높은 것이 아니듯이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드는 것만으로 酒格은 높아지지 않는다. 酒道에도 엄연히 段이 있다는 말이다.
첫째, 술을 마시는 연륜이 문제요,
둘째, 술을 마신 친구가 문제요,
셋째, 마신 기회가 문제며,
넷째, 술을 마신 동기,
다섯째, 술버릇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그 단의 높이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1) 불주(不酒):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2) 외주(畏酒): 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
3) 민주(憫酒):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4) 은주(隱酒):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5) 상주(商酒): 마실 줄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6) 색주(色酒):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7) 수주(睡酒): 잠이 안 와서 마시는 사람.
😎 반주(飯酒): 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
9) 학주(學酒): 술의 眞境을 배우는 사람(酒卒).
10) 애주(愛酒): 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酒徒).
11) 기주(嗜酒):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酒客).
12) 탐주(耽酒):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酒豪).
13) 폭주(暴酒): 酒道를 수련하는 사람(酒狂).
14) 장주(長酒): 주도 삼매에 든 사람(酒仙).
15) 석주(惜酒):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酒賢).
16) 낙주(樂酒):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酒聖).
17) 관주(關酒): 술을 보고 즐거어 하되 마실 수는 없는 사람(酒宗).
18) 폐주(廢酒〔涅槃酒〕):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불주·외주·민주·은주는 술의 眞景·진미를 모르는 사람들이요, 상주·색주·수주·반주는 목적을 위하여 마시는 술이니 술의 眞諦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학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 초급을 주고, 주졸이란 칭호를 줄 수 있다. 반주는 2급이요, 차례로 내려가서 불쥬가 9급이니 그 이하는 斥酒 反酒黨들이다.
애주·기주·탐주·폭주는 술의 진미·진경을 悟達한 사람이요, 장주·석주·낙주·관주는 술의 진미를 체득하고 다시 한번 넘어서 任運自適하는 사람들이다. 애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의 초단을 주고 酒徒란 칭호를 줄 수 있다. 기주가 2단이요, 차례로 올라가서 열반주가 9단으로 명인급이다. 그 이상은 이미 이승사람이 아니라 단을 매길 수 없다.
그러나 주단의 단은 때와 곳을 따라 그 질량의 조건에 따라 비약이 심하고 강등이 심하다. 다만, 이 대강령만은 確乎한 것이니 유단의 실력을 얻자면 수업료가 기백만금이 들 것이요, 수행연한이 또한 기십년이 필요할 것이다(단, 천재는 此限에 부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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