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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현악사중주곡 13번 Bb장조 중 '카바티나'와 피날레(베토벤의 마지막 작품)(2022. 12. 16.) 作家의 꿈, 땡제이의 꿈



(베토벤 현악사중주곡 13번 Bb장조 중 '카바티나'와 피날레(베토벤의 마지막 작품)
상쾌한 아침 맞으셨는지요? 날이 더 추워졌습니다. 서울엔 눈도 많이 내리고 아침 기온은 영하 11도까지 내려간다지요. 꽁꽁 싸매고 조심조심 다녀야겠습니다.
남의 비판에서 자유롭고 싶은 것도 인간의 욕망 중의 하나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는 불경의 구절을 되새겨 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써 본다. 아마도 법구경..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면 많이 한다고 비판하고,
말을 적게 하면 적게 한다고 비판하며,
말을 않으면 말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비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비판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우면 되는 거다. 심지어, 내 귀에 쓴 소리는 약이라는데.]

1.베토벤 현악사중주곡 13번 Bb장조 중 '카바티나'와 피날레(베토벤의 마지막 작품)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 한 곡 선곡하기 시즌4>를 이어갑니다. 오늘은 이채훈 <1일 1페이지 클래식 365>에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곡 13번 Bb장조 중 '카바티나'와 '피날레'를 소개한 내용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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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음악은 오직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바쳐질 것이다." 젊은 시절, 베토벤은 고향 친구 베겔러에게 이렇게 밝혔다. 1770년 12월 16일, 베토벤이 태어났다. 알콜 중독인 아버지에게 학대받으며 음악을 익힌 그는 14살 무렵부터 소년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22살 때 빈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했고 작곡가로 명성이 절정에 오를 무렵 청각장애가 심해져서 좌절했다. 그는 이 비극을 숭고한 예술혼으로 극복해서 인류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는 걸작들을 남겼다.
베토벤 오신 날을 축하하며 함께 듣고 싶은 곡은? 그의 음악 중 가장 아름다운 곡, 현악사중주곡 Bb장조의 5악장 '카바티나'! 베토벤은 이 곡에 가장 순박한 마음을 담아 인생에 대한 감사를 노래하고 있다. 베토벤은 인생의 아픈 날들을 돌아보며 흐느껴 울기도 한다. '카바티나'는 짦고 단순한 노래라는 뜻으로, 베토벤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자부한 곡이다. 이어서 가장 즐거운 6악장 알레그로! 이 피날레는 사연이 길다. 베토벤이 이 사중주곡을 위해 원래 쓴 피날레는 연주시간 15분이 넘는 '대푸가'였다. 1826년 3월 슈판치히 사중주단이 이 곡을 초연했을 때 청중들은 '대푸가'가 너무 어렵다고 느꼈고, 언론은 "중국말처럼 이해 불가능하다"는 평을 썼다. 이 소식에 베토벤은 "짐승들! 멍청이들!"이라며 분개했다.
아르타리아 출판사에서 좀 더 쉽고 단순한 피날레를 다시 써 달라고 요청했을 때 베토벤이 순순히 동의한 것은 의외였다. 베토벤은 "제일 좋은 게 바로 이 대목인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투덜대면서도, 이순에 접어든 거인답게 요구해 응해서 즐거운 피날레를 새로 작곡해 주었다. 인생을 달관한 뒤 얻은 환한 빛으로 가득한 이 피날레가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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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현미, 짝사랑

지금도 대학가에는 학보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1980년대 학보는 일종의 '낭만 배달부'였습니다. 학보에 얽힌 씁쓸한 연애담이 기록되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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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보(2018. 12. 16.)
요즘도 대학교에는 학보가 있을 것이다. 우리 대학 다니던 80년대 중후반에도 학보는 있었다. 학보를 편집, 발행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게 학보의 쓰임새는 그 내용을 읽는 데 있지 않았다. 아니, 나와 비슷한 친구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 당시 내게 학보는 대개 '썸타기'를 위한 수단이었다. 단언하긴 어렵지만, 나는 사내녀석들에게 학보를 보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타 대학 다니는 사내녀석 친구라면 신촌이나 홍대나 고대앞이나 어딘가에서 만나기로 약속해서 술 퍼 마시면 되지, 학보를 보내고 할 이유가 없다.
학보는 그걸 우편으로 발송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A4 용지 크기 정도의 종이를 잘 접어서 둘러싸 주어야 한다는 데 그 효능이 있었다. 둘러싼 종이의 겉면에야 누가 누구에게 보낸다는 주소가 적히지만, 어찌 주소만 적어서 우편물을 발송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학보를 둘러싼 종이 안쪽 면은 간단한 사연이라도 한 줄 적은 편지지가 되기 마련이었고, 그 내용이란 것이 맨날 그 날의 날씨만 얘기할 수 없는 것인지라, 수취인은 잘 지내는지 나는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런 것이 조금씩은 담기게 되어 있다.
결정적으로, 내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여학생에게 귀한 학보를 보내는 일은 절대 없었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학보를 보낸 수취인들 중 일부는 분명히 단순히 오늘의 날씨 이상의 얘기를 하고 싶은 소망을 갖게 한 사람들이었던 것도.
대학교 1학년 끝나갈 무렵이었던가, 고등학교 선배의 주선으로 어느 여대 학생들과 3대 3 미팅을 했다. 내 맘에 드는 눈이 왕방울같이 큰 여학생이 있었다. 학보를 한 장 보냈다. 그리고, 답장이 오나 안 오나 우편함을 얼씬거리던 어느 날, 드디어 왔다, 그녀의 학보!
한 달인지 두 달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를 만나고 다녔다. 내가 너무 좋아하고 다니는 꼴을 보고 불알친구놈 몇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처자인지 본다고 그녀를 만나기로 한 신촌의 어느 까페에 세칭 '껌팔러' 왔다. 주변에서 차 마시는 척하며 어떤 사람인지 관찰한다는 뜻이다.
황지우 시인의 시처럼, 몇 시간을 기다려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껌팔이 친구들이 가서 술이나 먹자고 하는데도 나는 아직 더 기다려 본다고 친구들을 보냈다. 결국, 대차게 바람을 맞았고, 이후 연락이 끊겼다.
또 미팅을 하고, 다른 여학생을 짝사랑하기도 하고 하며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한 장의 학보가 날아들었다. 날 바람맞친 그녀였다. 별다른 사연도 없이 날아온 학보. 이미 지나간 과거로 치부하고 있던 사람한테 날아온 학보이건만, 나는 흔들렸다. 그 당시 내 마음 속에는 다른 사람을 혼자 품고 있으면서 표현도 하지 못하는 외사랑같은 걸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 속이 혼란에 빠졌다.
결국, 외사랑은 영원히 마음에 묻기로 하고, 학보를 보낸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다시 만나 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몇 번 다시 만남 끝에 좀 흐지부지하게 헤어졌다.
아직도 궁금하다. 대차게 바람 맞친 이유도. 거의 1년 뒤 뜽금없이 학보를 보낸 이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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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바라기,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지금까지 읽은 구절 중에 퍽이나 마음에 깊숙이 꽃인 구절이어서 가끔 꺼내 보곤 합니다. 우리는 바로 곁에 행복이 있는 줄을 까맣게 모르고 늘 먼산을 헤매고 있다는 얘기가 여전히 가슴을 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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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찾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녀도 봄을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의 구름 따라다녔네.
허탕치고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
봄은 이미 매화가지 위에 한껏 와 있었네.
盡日尋春不見春 芒鞋遍踏朧頭雲
진일심춘불견춘 망혜편답롱두운
歸來偶過梅花下 春在枝頭已十分
귀래우과매화하 춘재지두이십분
- 송(宋)니승(尼僧)
겨울이 막 지나면 사람들은 봄, 봄, 봄 한다. 성미가 급해서가 아니다. 봄은 희망이자 꿈이다. 그래서 봄이 오면 자신의 인생이 무엇인가 좀 달라질 것 같은 희망이 용솟음친다. 산이나 냇가에 자꾸 눈이 간다. 논밭이나 들판에도 마음이 간다. 정원에 심어진 나무에도 저절로 끌린다. 희망과 꿈과 생기와 성장과 사랑과 기대감이 넘치고 있는 봄을 그리는 것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봄을 찾아 나섰다. 그 사람은 곧 모든 사람이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으로 찾아다닌다. 저 멀리 구름이 걸린 언덕배기와 넓은 들판에까지 돌고 돌았다. 그러나 봄은 볼 수 없었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 왔다. 우연히 뜰에 심어진 매화나무 밑을 지나다가 진한 매화향기를 맡았다. 고개를 들어 매화나무 가지를 올려다보니 새하얀 매화꽃이 막 피기 시작하였다. 종일토록 찾아도 찾지 못하던 봄을 집에 돌아와서 한껏 느꼈다. 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한 걸음도 옮기지 않은 자기가 늘 살고 있는 자신의 집안에 있었다.
의미가 깊은 시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봄을 찾듯이 행복을 찾아 헤맨다. 재화(財貨)나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다. 사람을 맞이하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고 자식을 두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다.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매달리는 것도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출가수행도 행복을 위해서고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성불(成佛)이나, 지극한 도(至道)나 열반이나 이 모두가 가장 이상적이며 바람직한 삶, 즉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그 진정한 행복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시간을 많이 소비해서 얻는 것도 아니며, 노력을 많이 해야만 얻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성불이나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 불교에서는 소위 말하는 팔만사천 방편을 시설해 두고 있다. 염불이나 간경이나 참선이나 주문이나 6도 만행 같은 일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수행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만 그 곳에 이르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한 것들은 어디에 이르기 위해서가 아니고 다만 그러한 삶일 뿐이다. 실은 영가 스님이 증도가에서 말했듯이 깨달으면 그것으로 다 끝이다. 공(功)을 들일 필요가 없다.[刻卽了不施功]. 열반경에서는 소를 잡던 백정이 그 자리에서 칼을 내동댕이치며, “나도 부처다.”라고 하였다.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순간 보고 듣고 숨 쉬고 느끼고 하는 이 사실이다. 이것이 삶의 모든 것이며 인생의 모든 가치와 의미가 다 담겨 있다. 성불도 열반도 행복도 지금 바로 이 순간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항용 지금에 존재하지 않는, 언제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허상(虛相)에다 초점을 맞춰두고 그것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이렇게 확실한 실상(實相)은 늘 외면한다.
사람들이 집안에 있는 봄을 모르고 멀리 찾아 헤매듯이, 행복이라는 봄도 성불이라는 봄도 열반이라는 봄도 여기 이 순간의 자신을 버리고 다른 곳을 찾아 헤맨다. 봄에 대한 이 시는 곧 이 문제를 깨우치는 글이다.
이 시는 송나라 때 어떤 비구니스님의 오도송이라고 전해질뿐 정확한 이름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또 송나라 때 인물인 대익(戴益), 자는 여해(汝該)며 호는 봉지(鳳池)라는 사람의 작품 탐춘(탐춘)에서도 같은 뜻이 보인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③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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