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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교향곡 8번 B단조 <미완성>(2022. 12. 20.) 作家의 꿈, 땡제이의 꿈


(슈베르트 교향곡 8번 B단조 <미완성>)
상쾌한 아침 맞으셨는지요? 동지가 코앞이네요. 가장 밤이 긴 날이란 건, 뒤집어 보면 그날부터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니 계절이 봄을 향해 방향을 트는 날이란 얘기도 됩니다. 우주의 봄은 이미 시작됐다!라고 선언하는 날이 아닌가 싶어요.
음악편지에서 늘 '오늘도 행복하세요!'라 말하며 물러나곤 합니다. 행복에 대한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메모되어 있네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행복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행복은 늘 붙어있는 세포처럼 늘 곁에 있는 순간순간의 존재 자체이다.
ㅡ어느 교수님의 인용구, 대충ㅡ
행복은 별 거 아니다. 좋은 사람들과 밥 먹고 얘기하는 것.
ㅡ내 생각ㅡ]

1.슈베르트 교향곡 8번 B단조 <미완성>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 한 곡 선곡하기 시즌4>를 이어갑니다. 오늘은 이채훈 <1일 1페이지 클래식 365>에서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B단조 <미완성>을 소개한 내용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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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1797~1828)는 이 교향곡을 24살 되던 1822년 가을에 쓰기 시작해서 다음 해 4월, 3악장을 20마디까지 쓰다가 중단한 채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영혼의 깊은 심연에서 울려 나오는 신비로운 슬픔의 1악장, 세상의 번뇌를 초월한 듯 평화롭고 달콤한 2악장... 두 악장으로 이미 완성된 느낌이기 때문에 3, 4악장을 쓸 필요를 느끼지 않은 걸까? 그라츠 음악 협회의 명예회원이 된 슈베르트가 이에 보답하기 위해 착수한 걸로 추정되지만 왜 미완성으로 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31살로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의 미완성의 삶처럼 수수께끼로 가득한 작품이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보다 조금 먼저 작곡한 셈인데, 이미 슈베르트의 확고한 개성이 넘친다. 현의 화음은 상쾌하고, 관악기의 색채감은 화려하고, 강약 대비는 역동적이다. 짧은 악절 안에서 무궁무진한 조바꿈으로 섬세한 감정 변화를 표현한다. 1악장은 나지막한 콘트라바스의 선율로 시작한다. 불안하고 격정적인 현의 반주에 맞춰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첫 주제를 연주한다. 2악장은 달콤하고 평화롭다. 목가적인 3박자의 선율은 들꽃 가득 피어난 봄의 초원을 산책하는 느낌이다. "깊은 산속 옹달샘"과 비슷한 선율이 등장하는 게 재미있다.
슈베르트는 사후에 발견된 곡이 많아서 "죽어서도 작곡하는 사람"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 곡은 그가 죽은 뒤 37년이 지난 1865년 지휘자 요한 헬베크가 발견하여 초연했고, 즉시 19세기 낭만 음악의 최고 걸작 반열에 올랐다. 음악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깊은 서정을 들려주는 이 작품은 두 악장으로 되어 있지만 불완전하다는 느낌이 없다. "<미완성>은 모든 교향곡 중 가장 완성미가 뛰어난 곡"이라는 역설적인 평가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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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e Beatles, Yesterday

에피소드와 어울릴 만한 곡을 생각해 내기 어렵네요. 그저 옛 이야기이니 Beatles의 이 곡을 골라 봅니다.
마흔 여덟 살 때, 고2인 아들내미와의 대화 내용입니다. 참, 나 어이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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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담배 권유하는 아들(2014. 12. 20.)
"아빠! 담배 냄새 개쩔어! PC방 냄새 나!"
당연하지. 새벽 네시까지 술담배에 쩔어 있다 들어왔는데.
"아빠, 담배 값도 오르는데 끊으실 생각 없어요?"
"엄만 비싸지니 반만 피우라던데? 드러워서 끊을까, 줄일까 생각중이야. 나쁜 놈들! 삼성전자에서 세금 더 걷지, 서민들 주머니를 터냐!"
"하긴, 엄마가 아빤 회사 그만 두기 전엔 끊기 어려우실 거라 하더라. 전자담배 어때요?"
"요새 전자담배로 많이 바꾼다더라. 담배냄새도 안 나고 괜챦다더라."
"제 친구가 전자담배 전문간데, 알아봐 드려요? 전자담배가 길쟎아요. 근데 갤럭시 메가 밧데리 충전기 싸이즈로 작은 것도 있어요."
나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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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광석, 부치지 않은 편지

1987년 6월 항쟁을 담은 다큐멘터리에는 이 곡이 배경음악으로 많이 쓰이더라구요. 공권력에 의한 대학생들의 죽음이 촉발한 항쟁이었으니 이 가사가 가장 적절해 보이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그 35년 사이 세상은 변화했는지 질문을 던져 보면, 그렇기도 한데 별로 안 그렇기도 한 것 같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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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2018. 12. 20.)
<1979년 10월말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은 나쁜 사람일 거야. 저 꼰대 새끼 눈이 울어서 퉁퉁 부은 거 보니까, 같은 편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적의 친구는 적이라고, 이사 자주 다니던 우리 집 가장이 '간첩이냐?'고 힐난하듯 묻는 것을 비롯해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해대던 국민학교 6학년 담임 선생이1979. 10. 26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저격받아 사망한 박대통령의 죽음에 보인 태도를 보고, 아무 근거없이도 그렇게 확정지었다.
<1980년 5월 어느날>
서강대학교 후문에서는 교문 밖으로 진출하려는 학생들의 짱돌과 화염병, 전투경찰들이 쏘아대는 최루탄이 난무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강대를 마주보고 있는 숭문중학교 교실에도 최루가스가 날아들었다. 쉬는 시간에 수군수군대는 아이들 얘기 속에는, '광주에서 폭동이 났대', '공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됐대', '군인들이 광주시민들을 총으로 쏴 죽였대.', '임산부 배도 갈랐대.', '여자들 젖가슴도 도려냈다는대' 이런 소리들이 끼어 있었고, 방송에서는 '국민 여러분들은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고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소리가 훌러나왔다. ' 적과 싸우는 게 군인지 왜 국민을 죽여, 설마?' 이러면서 학교에 다녔다.
<1980년 7월 30일>
'전두환 대통령은 훌륭한 사람인가 봐. 과외를 금지시켰잖아. 과외를 할 형편이 아닌 나도 이제 대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어.'
<1986년 2월>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 고등학교 2년 선배이자 재수해서 한 학번 선배인 형이 새로 서울대에 입학하게 된 친구들에게 밥을 사 주었다. 그리고, 몇몇 신입생에게 복사물을 나눠 주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국어교과서의 글 중 상당수가 친일문학가들의 글이라고 조목조목 설명해 주는 내용이었다. '이럴 수가. 우린 뭘 배웠던 거지. 내가 암송하던 시가 친일파의 글이었다니..',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1986년 3월 2일>
대운동장에서 입학식이 있었다. 대운동장은 학교 정문 진입로 왼편에 위치하고 있었고, 재학생과 전투경찰들 사이에 화염병과 짱돌, 최루탄의 공방이 진행되었다. 총장의 입학 축하말씀에 귀가 가기 보다는 '왜 싸우고 있는 걸까?'하는 궁금증이 더 컸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데모하지 말어야. 데모하다 잡혀가서 너 잘못되면 난 심장이 터져 죽어 버릴 것이여."
학과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운동권의 온상이라는 학회나 써클 같은데는 겁이 나서 관심을 안 두고, 이화여대와 우리 고등학교 졸업생의 연합 독서토론 써클에 가입해 사회성 짙은 문학작품이나 정치경제학 책, 한국현대사를 재조명한다는 책들을 조금 읽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주류경제학이 세상의 억압적이고 부정의한 모습과 불평등함을 잘 다루지 못할 것 같았고, 정치경제학의 이론이 세상을 잘 설명하는 것처럼만 느껴졌다.
대자보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등 금서들을 통해 본 광주민주화운동의 이야기들은 중학교 때 유언비어라고 들었던 내용들이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잘 찾지 못했다.
사회의 변혁을 위해 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은 들었지만, 열심히 운동하는 친구들처럼 뛰어들 용기도 없고, 핑계같지만 '너 잘못되면 나는 죽어 버린다'는 엄마의 협박도 무서웠다. 결국, 내가 택한 건 학과수업도 잘 안 들어가면서 친구들 다니는 고대나, 한양대, 연세대, 이화여대 같은 데 가서 놀고 친구들과 거의 매일 술타령하는 거였다.
<1986년 4월 28일 >
친구 만나러 고대에 가 있었다. 서울대에서 전방입소 거부투쟁을 하던 2학년 학생 둘이 분신해서 죽었다는 소식이 고대 안에 퍼졌다. 사람이 죽었다는 소리에 이성을 잃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학교에서 짱돌을 깨서 던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술타령으로 복귀했다.
<1987년>
영화화됐지만, 학생운동하던 한 학년 위 학생이 고문받다 죽었다. 사회가 들끓기 시작했다.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대통령 간선제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했다. 사회는 더 높은 온도로 끓어 올랐다. 직격탄으로 쏜 최루탄에 연세대 한 학생이 사망했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열기가 폭발했다. 술타령만 하던 나같은 이도 거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섰기 때문에 겁날 것 없다고 생각했는 지도 모른다. 어쩌다 보니 연세대에서 출발한 행렬이 시청에을 거쳐 광화문으로 갈 때쯤, 맨 앞 대열에 껴 있었다. 스크럼을 짠 채 대로에 학생과 시민들이 누웠다. 페퍼포그차가 연기를 뿜기 시작하더니 하늘 위로 최루탄들이 날아 나보다 더 뒤쪽에 떨어지는 걸 보았다. 일어나 냅다 뛰기 시작했다. 겁장이인지라 뒤돌아 볼 생각도 못하고 뛰다보니 어느듯 만리동 언덕까지 와 있었다. 공덕동까지 터덜터덜 걸어갔다.
6.29선언으로 세상이 바뀌나 보다 했다. 아마추어가 보기에 김대중 후보나 김영상 후보가 같이 출마하면 노태우 씨가 당선될 게 뻔한데도 두 분은 단일화에 대해 자기가 단일후보일 때만 가능하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평민당사에 들어간 학생들 틈에 어쩌다 나도 들어갔지만, 결국 노태우씨가 당선되었다.
정치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술에 젖어 사는 내 2년의 대학생활을 말없이 지켜보시던 아버지는 행정고시를 봐 보는 게 어떻냐고 권했다. 3주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그렇게 하기로 했다. 2년간 술만 마시며 지난 내가 아직도 뭔가 해 낼 힘이 있는지 확인하는 셈 치고 슬슬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 이후로는 내 먹고 사는 문제 해결하는 국면으로 전환했고, 직업을 구하고 직장을 중심으로 살았다. 그 삼십년 가까운 세월동안 한국사회는 엄청나게 변했다고 하는데, 정말 변한 건지 무늬만 변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보다 세상을 한 뼘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가면 잘 산 거라는 어떤 사람의 말에 비추어 보면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세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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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BBA, Money money money

'돈 걱정 하지 않을 만큼 돈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 안 해 본 사람은 드물겠죠?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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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한 내 생각은 모순적이다. (2014. 12. 20.)
어릴 적 어떤 계기로 부자는 뭔가 부정한 수단을 쓰거나 다른 사람을 짓밟어야 될 수 있다는 그릇된 신념을 갖게 된 나는, 스스로는 돈을 별로 밝히거나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인 양 생각했다.
황당하지만, 자가용은 부르죠아나 갖는 물건이고, 골프는 부르죠아 스포츠라 나랑 안 맞는다 예단했다.
그러나, 실은 난 돈이 참 좋다.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쓸 수 있으니.
직장 선배님과의 생활 중에 돈에 관련된 기억이 유별나게 기억나는 거 보면, 난 정말 돈에 관심이 많은 거다.
신혼 시절, 많지 않은 월급에 이것 저것 떼고 나면 한 달 살림할 돈이 삼만원만 남아 아내가 '새우깡 사먹을 돈도 없어 속상하다'던 시절, 야근하고 함께 퇴근하던 양과장님, 갑자기 "니 용돈은 있나? 지갑 주봐라."하셨다.
아무 생각없이 지갑을 건넸는데, 이 양반 혀를 끌끌 차며, "남자가 지갑 비어가 다니믄 안 되는기라."하시며 십만원 수표를 지갑에 넣어 건네주셨다. 1996년..
그 당시 모시던 국장님, 광주 강연이 있어 수행하고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강연료를 한 장씩 세더니, 반을 뚝 잘라 내게 주시며,
"자료 만드느라 수고했으니 반땅이다."
그리고, 1997년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나에게 있는 100달러짜리를 탈탈 털어 주시던 실장님.
나는 후배들을 그렇게 대하지 못했다. 그리운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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