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 프리메이슨 칸타타 K.619)
상쾌한 아침 맞으셨는지요? 어제는 브러셀에서 대사관 근무할 때 동료들과 광화문에서 저녁약속이 있었는데, 돈암동 집에서 성북천과 청계천 길로 걸어서 가 보았습니다. 1시간 25분 정도 걸렸는데, 풍경이 좀 단조롭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도, 운동 삼아 걷기는 괜찮았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길을 걷게 될까 궁금한 아침입니다.
그제 만난 대선배님의 말씀에 자극을 받아, '가령 앞으로 30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1.모짜르트, 프리메이슨 칸타타 K.619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 한 곡 선곡하기 시즌 4>를 이어갑니다. 오늘은 이채훈 <1일 1페이지 클래식 365>에서 모짜르트의 <프리메이슨 칸타타 K.619>를 소개한 내용 전해 드립니다. 모짜르트가 사상적으로는 '몽상가'에 가까왔던 모양이네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아무도 꿈꾸지 않으면 세상은 더 나빠지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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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프랑크푸르트 장터에서 프랑스 혁명 1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때가 왔다. 자유를 쟁취하자", "민중이여, 노예의 멍에를 던지고 일어나라"는 구호와 함께 '자유냐 죽음이냐' 외치는 유인물, '천부인권'이 새겨진 손수건이 난무했다. 모짜르트는 이 장터를 방문, 프리츠 하인리히 치겐하겐을 만났다. 그는 철저한 평등주의자로, 노예 착취와 여성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의 사상에 공감한 모짜르트는 이듬해 10월 이 노래를 작곡하여 프리메이슨 행사에서 초연했다.
"기만의 굴레를 끊어라. 편견의 베일을 찢어라.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낡은 옷을 벗어라. 인간들의 피를 쏟게 한 그 쇳덩이를 녹여서 쟁기를 만들자! 형제들의 가슴에 치명적인 납덩이를 퍼부었던 검은 화약으로 압제의 바위를 깨뜨리자!"
루소보다 더 시대를 앞선 사람으로 평가되는 교육자 치겐하겐의 사상은 오늘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아름다운 지구 위의 모든 존개가 올바른 관계를 맺고 조화롭게 산다면 우리는 모두 세 배나 행복해질 것이다. 힘없는 동료 인간을 팔고 사는 일을 멈추게 될 것이다. 탐욕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전쟁으로 내모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남의 나라 땅을 탐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헛된 야심이 자연스런 우정의 끈을 파괴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잘 배운 우리 모두 고귀하고 세련되게 자기 성취를 이룰 것이다.
평화 세상을 역설한 이 곡은 피아노 협주곡 C장조 K.503의 첫 주제와 비슷한 프리메이슨의 팡파르로 시작한다. 끝부분 알레그로는 악과 고통에 대한 인간의 승리와 환희를 예찬한다. "오직 현명하게, 힘차게 서서 모두 형제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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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영남, 모란동백
노래방 가서 친구가 부르는 '모란동백' 들어본 지도 오래 됐네요. 꽃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건, 꽃이 없어 그리워하던 시간들이 쌓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재가 그리움을 키운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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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동백(2018. 3. 30.)
용인사는 기자 친구 유부장을 만나 노래방에 가면 꼭 듣게 되던 모란동백 노래를 오랜만에 찾아서 들어본다. 이제는 용인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하였으니, 오리역 근방 어디쯤에서 소주잔 기울이고 노래방 찾아가던 일도 내 인생에 다시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역사 속의 일이 되었다.
사는 게 다 그렇다. 그 순간에는 그 때가, 그 곳이 전부이고 영원히 그 시간과 공간 속에 머물 것처럼 느끼며 지내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변화가 있다. 사실 로마로 출발해서 올 때에는 우리 부부가 해외 나와 있는 사이에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될 지는 몰랐다. 그러나, 어쨌든 일이 그렇게 풀려갔고, 우리는 이사를 해서 용인시민이 아닌 서울시민이 되었다.
부동산 투자를 염두에 두고 산 사람들이 아니지만, 요즘 아내가 부동산 공부를 유튜브로 하면서 좀 헷갈려 한다. 부동산에 대해 공부하고 유심히 보고 있었으면 경제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었지 않나 하는 얘기를 하기도 하고, 너무 바보멍충이처럼 산 것 아닌가 자책 비슷한 것도 하고.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부동산에 대해 정말 털끝만금치도 모르는 무식쟁이이고, 수지 집을 살 때도 계약서에 서명하러만 등장했던 나로서는, 그나마 그 집을 생애 첫 내 집으로 사서 가격이 내 기준으로는 적당히 오른 값으로 팔았고, 무엇보다도 10년 이상 주거안정을 가져다 주었다는 점에서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와서 여기 저기와 비교해 보고 우리는 손해 보고 살아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들 부질없는 일, 아니 정신적으로 해로운 일 아닐까 싶다. 결혼했을 때 부부합쳐 2,500만원 자본에 2,200만원 빚을 내어 열다섯 평짜리 아파트 전세로 시작해서 지금은 그래도 그보다는 그보다 훨씬(!) 큰 평수의 내 집을 갖고 있다면 그래도 괜찮은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옛 말 중에 위를 쳐다보면 한다 끝도 없으니, 밑을 보고 살라는 말 생각이 나는 밤이다. 아무튼, 우리 가족 잘 해 왔고, 이만하면 괜찮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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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페, 경기병 서곡
너무 익숙한 선율이죠. 영화음악으로도 많이 쓰였던 것 같습니다. 뭔가 진을 펼쳐 격돌하는 전쟁장면이 연상되는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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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임에 대하여(2014. 3. 30.)
4년전, 마키아벨리 어록을 읽다..
1. 시오노 나나미 저 "마키아벨리 어록"을 훑어봤습니다. 눈에 띈 대목이 있어서 옮겨 봅니다. 전장에 내 보낼 지휘관에 대한 권한 부여 문제이기는 하지만, 조직관리나 위임에 관해서도 충분히 접목될 수 있는 이야기인 듯 싶습니다.
[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읽고 거기서 어떤 교훈을 얻고 싶으면, 로마 시민과 원로원이 취한 모든 행동을 차분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검토할 가치가 있는 사항은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다음 사항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군대를 지휘하는 집정관이나 임시 독재집정관 또는 군사령관들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주어 내보냈느냐 하는 것이다.
대답은 분명하다.
고대 로마인은 그런 사람들에게 절대의 권한을 주어서 내보냈다.
원로원은 새로 전쟁을 시작할 때와 강화할 때의 결정권만 갖고 있었다. 그 밖의 일은 모두 일선 지휘관들의 의사와 판단에 맡겼다.
이것은 원로원의 사려깊은 결과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원로원이 지휘관들에게 모든 일을 원로원의 결정에 따르라고 요구한다면,
지휘관들은 전력을 투입하지 않게 된다. 가령 빛나는 전과를 올려봐야 작전을 지시하는 것이 원로원인 이상, 지휘관 개인의 영예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밖에 원로원은 자기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일까지 지시하는 위험도 무릅쓰게 된다.
물론 원로원 의원들 가운데는 전쟁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 많았다. 그러나 현장에 있지 않아서 작전 수행에 필요한 갖가지 자질구레한, 그러면서도 살아있는 정보에 접할 수 없는 처지에 있으니 위험은 역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 로마에서는 군을 이끄는 지휘관은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고 승리의 영예도 개인에게 돌아가게 했다.
이것과 반대되는 예는 베네치아와 피렌체의 방법이다.
이 두 공화국의 지휘관은 대포의 설치 장소에서 모든 일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본국 정부의 결재를 받아야 했다. 전쟁을 시작할 때를 제외하면 만사가 이런 식이며, 관료주의 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개인의 영예는 없고, 영예는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는 훌륭한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상 현재의 참상의 원인이 되었다.
(정략론) ]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10여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된 단위부서의 관리자만 되도 부하직원들에게 일을 어느 선까지 위임하고 어는 선까지 간여하느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부서가 맡은 과업의 성격, 부하직원의 성향, 조직문화 등등 참 여러 가지 변수가 고려요인이 되긴 하겠지만,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부하 입장에서 가장 책임감있게 일하게 되는 경우는 역설적이게도 부서장의 간섭이 거의 없는 경우였다.
초임에서 중견 사무관 시기를 겪으면서 모신 몇 분의 과장님들의 조직 관리 스타일이 다 달랐는데, 한 과장님은 직원들이 보고서를 들고 가면 우선 연필부터 들고 바로 문구 하나씩 고치기 시작하는 분이었다. 그런 고치는 과정이 몇 번 반복되니까 내게 든 생각은, '어차피 내가 열심히 해 가도 과장님이 미주알 고주알 고치실 거니까..'였고, 보고서에 들어가는 정성이 줄어들었다. 결국은 끝까지 마무리도 제 때에 못하면서 과장님이 고치고 또 고치다가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 다음에 같은 과에서 모신 과장님은 내가 가져간 몇 건의 보고서를 검토해 보신 뒤로는, 내가 보고서를 들고 가면, 펜을 들고, "싸인하는 데가 어디야?" 하시면서 내용은 내가 알아서 정리하고 책임지고 국장 이상의 결재를 받아오라는 식이셨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보고서 문구 하나하나에 더 신경을 썼고, 나중에는 까다로운 국장님께 "아주 잘 썼다."는 소리를 듣게까지 되었다. 나에게 책임이 완전히 맡겨졌으니까.
역시 같은 과에서 모신 다음 과장님은 보고서 내용에 대해서 뿐 아니라, 가끔은 작업스케쥴까지 간여를 하시려 하는 통에, 나름 자존심 강한 나로서는 거기까지는 간여하시지 말라고 대들기까지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마도 금요일 퇴근 무렵쯤의 대화..
(과장님) "그러니까 이 보고서를 언제까지 완성할 거여?"
(김사무관)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까지는 마치겠습니다."
(과장님) "그러면 초벌 보고서를 언제까지 완성할 거지? 초벌 보고서 들고 나랑 상의할려면 일요일 언제까지 끝낼 거여?"
(열받은 김사무관) "데드라인만 과장님과 상의했으면 됐지, 초벌보고서 만들고 그런 중간 스케쥴까지는 간여하지 말아 주십시오. 휴일에 작업하는 건데.. 그 정도는 제가 결정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밤을 새든 밤을 까든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사실 위의 상황은 약과고, 어떤 지시가 내 소신과 다르니 못하겠다고 뻗대는 나에게 "하라면 해!" 하며 고함지르는 과장님에게 나도 책상 치며 맞고함 지르고 사무실에서 잠시 잠적한 일까지도 있었으니, 일하는 방법은 많이 배웠지만 감정적으로 상처도 많이 받았던 시절이었다.
그 과장님도 철없는 김사무관 때문에 맘 고생 많이 하고 화도 많이 나셨겠지만, 간여가 많아진다고 일의 품질이 반드시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명확한 방향 제시와 적절한 수준의 조언 정도 해 주는 게 가장 나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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