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 <후궁에서 구출하기>: 중 '어떤 고문을 가할지라도'(2023.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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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후궁에서 구출하기> 중 '어떤 고문을 가할지라도')
상쾌한 아침 맞으셨는지요? 아파트 뜨락에 보니 철쭉도 피어나기 시작하고 장미나무 잎들도 기지개를 펴고 라일락도 살짝 피어나고 있고, 봄의 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제로 백수생활 딱 한 달 했습니다. 백수체질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래도, 주말과 월요일에는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놀멍쉬멍할 요량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모짜르트 <후궁에서 구출하기> 중 '어떤 고문을 가할지라도'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 한 곡 선곡하기 시즌 4>를 이어갑니다. 오늘은 이채훈 <1일 1페이지 클래식 365>에서 모짜르트의 <후궁에서 구출하기> 중 '어떤 고문을 가할지라도'를 소개한 내용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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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에서 구출하기>의 여주인공 콘스탄체는 터키 하렘에 노예로 잡혀 왔다. 파샤 셀림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녀는 벨몬테를 사랑할 뿐이다. 2박, 파샤 셀림은 자신의 구애를 거절하는 콘스탄체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겠다고"고 말한다. 콘스탄체가 "차라리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하자 파샤 셀림은 "죽이는 대신 살려둔 채 가장 고통스런 고문을 가하겠다"고 대답한다. 콘스탄체는 어떤 고문을 가해도 자기 마음은 변치 않을 거라고 노래한다.
"어떤 고문이 기다린다 해도 나는 웃어 주리라. 어떤 고통과 아픔도 나를 흔들 수 없으리. 오직 진실이 함께할 때 두려운 게 뭐가 있을까. 어떤 끔찍한 명령이든 내리세요. 미친 듯 협박하고 처벌하세요. 죽음으로 해방될 때까지 저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1782년 7월 16일 초연 때 객석에는 모짜르트와 곧 결혼하게 될 콘스탄체 베버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 오페라의 주인공이며, 모짜르트가 이 오페라로 두 사람의 변치 않을 사랑을 기념하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살리에리의 연인 소프라노 카발리에리가 이 화려한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황제 요젭 2세는 귀족 중심의 이탈리아 오페라 대신 누구나 이해랄 수 있는 독일어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고 모짜르트에게 요청했고, 모짜르트는 열과 성을 다해 이 작품을 썼다. 터키 하렘이 무대인 만큼 터키풍 음악이 등장하는 게 흥미롭다. 힘차고 재기발랄한 서곡, 1박 파샤 셀림이 등장할 때 나오는 '예니체리 합창', 3막 '터키풍의 피날레' 등은 이 오페라에서 가장 멋진 대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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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윤선, 아들(Anak)
1970년대, 국민학생들에게까지 알려졌던 필리핀 가수 Freddie Aguilar의 곡 Anak을 번안한 곡이죠. 부모 자식 사이도 생각보다 참 어려운 관계입니다. 특히, 양육에서 엄마가 주된 역할을 하고 아빠는 '무관심'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한국에서 아빠와 아들 사이는 만만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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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허당..(2014. 4. 1.)
< 5년전, 그러니까 아들내미 초등학교 6학년 때 에피소드네요..>
금요일 저녁에는 비교적 일찍 퇴근해서, 아들내미와 둘이 동네에 있는 돈꼬레라는 삼겹살 집에 갔습니다. 아내는 서울시내에 볼 일이 있어서 나가 있구요.
일요일 점심 때, 친가 쪽에 가족 모임이 예정되어 있는데, 식사 끝날 무렵에 명수가 "근데, 제가 거기 꼭 가야 되요?" 이런 질문에 그만 제가 울컥하고 성질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두 살 밑에 여동생 가족이 중국에 몇 년 살러갔다가, 이만저만한 사정이 있어 한 두 주전에 1년간의 중국 생활을 접고 귀국을 했는데, 그런 계기로 만나는 본가 모임에 "꼭 가야 하느냐?"는 질문이었죠.
밥 먹는 중간에 친구들하고 메시지 주고받고 통화하면서 오가는 얘기가,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가 수원으로 이사간 친구가 일요일날 놀러오니까 친구들끼리 모인다는 겁니다.
아무튼, 가족 모임에 "꼭 가야 되요?"라는 질문을 듣자마자, 논리적으로 따질 것도 없이 성질이 나서 "너 가기 싫은 데는 아무 데도 가지 마라!" 나름 소리를 지르고 계산서를 들고 먼저 나와버렸습니다.
계산하고 나오니, 명수는 자전거를 타고 먼저 집으로 가다가, 중간중간 저를 기다리기도 하다가 하면서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습니다.
그 몇 분 사이, 생각을 좀 해 봤습니다. 형제가 없이 자라고 있는 명수에게는, 내가 여동생이 귀국했다고 꼭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되겠다 싶기도 하고, 나도 가끔 벌어지는 사촌들 모임을 "각자 제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농경시대의 흔적이며 곧 없어질 것"이라 하며 매우 피곤해 했던 생각도 나고, 아무튼 생각이 복잡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조금만 쌈지 공원에서 명수와 다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나) "명수야, 네가 형제가 없이 혼자 사니까 잘 모르겠지만, 큰 아빠, 고모, 작은 아빠는 아빠는 같은 부모님한테 태어나서 삼십년을 같은 집에서 살던 사람이고 평생가는 사이야.."
(명수) "글치만, 내가 그 사람들하고 살 것도 아니잖아. 친구들하고는 평생을 갈 수도 있고.."
대화는 여기서 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서로 성질이 났고, 난 TV 보다 잠이 들었구요.
좀 늦게 들어온 아내에게, 잠결 속에서도 나와 명수 티격거리는 얘기를 해 주고 잤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내 기준으로는 꽤 늦잠을 잤습니다.
아내에게, "내일 가족 모임에 명수 어쩌지?" 물어보니,
"가기로 벌써 다 정리했어." 아내의 답변입니다.
신기해서, "어떻게?" 물어보니, 이렇게 얘기했답니다.
"야, 중국에서 살다 돌아온 거랑, 수원에서 오는 거랑 같냐?" 이 말 한 방으로 정리했다나요?
나 자는 사이에 명수가 아빠는 괜히 울컥해서 성질 부린다고 명수가 엄마한테 투덜투덜했었나 봐요.
ㅎㅎ..
아빠는 아들내미를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면서 괜히 성질이나 내는 사람이고, 엄마는 아들 다루는 노하우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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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월과 오월, 욕심없는 마음
로마 부임 아주 초기에 '가계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며칠 시도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이내 중단하긴 했죠. 기록을 해 보면 수입, 지출 구조도 보이고 돈을 아낄 포인트도 찾아질 거란 생각에서였겠지만, 체질적으로 그런 건 잘 못하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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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쓰기 단상(2017. 4. 1.)
2017년 3월 마지막날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가계부를 쓰기 시작하다. 만 50세를 딱 6주 남기고. 쳇! 사는 게 디다. 지천명은 무슨 개코나다.
장창수님께 단 댓글을 본문화.
아, 늘상 배고프고 돈 고프죠. 결국은 돈은 카드는 없고 오로지 용돈받아 쓰던 어린 시절처럼 아끼고 또 아껴쓰고, 살빼기는 애덜 때처럼 통통통 튀어 다니면 돈 아껴지고 살도 안 찔 것 같아요. 신용카드라는 허망한 것에 기대어 과소비를 하게 되는 것 같구요. 몸 편하기 바라면서 동시에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모순도 있는 것 같습니다.
1977년 국만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하루에 50원 정도 용돈을 주셨는데, 헌 어린이 동화책이든 교양서적이든 하여튼 헌책방에서 한 권 정도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이었지요. 작은 꼬깔 한 개 분량에 10원 정도하던 뻔데기도 먹고싶고, 10원이면 아마 서너줄 하던 쫀드기도 먹고 싶고, 얼추 50원 안에서 해결되던 뽀빠이, 자야, 라면땅, 냉차, 아이스께끼, 꼬치오뎅이나 떡볶이 등의 유혹에도 잘 넘어갔지만, 책을 사려면 군것질의 유혹을 넘어서야 했었죠. 마음 먹고 헌책방에 가면, 한권을 고르기 위해 세시간 네시간 이 책 저책을 뒤지다 간신히 가성비 좋은 한권을 구해 집으로 저녁 먹으러 돌아갈 때 조금 과장하면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얘기가 샜는데, 정말 가난했던 1960, 70년 대 개발 초기 시절의 아이들처럼, 결핍속에서 아끼면서 사는 자세릏 되살려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마침 해외근무 나오니 한국의 살림도 유지해야 하고, 여기 로마에서도 생활을 유지해야 살아야 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점증되어 가정경제의 지속가능성에 큰 위협이 될 정도로 누적된 가계부채도 이제는 줄여야 노후가 덜 힘들어질 거라는, 어쩌면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중년들이 짊어진 가정경제의 기본 문제에 직면하면서 드는 잡상들입니다.
잉크가 바닥날 때까지 다 쓰는 모나미볼펜과 싸인펜, 몽당연필, 계속 리필되는 만년필, 갱지연습장과, 연필로 쓴 위에 볼펜으로 덧쓰는 연습장, 신문지, 빈병. 종이류, 책등을 폐품수집한다고 학교로 가져가던 일, 한 톨의 쌀도 보리도 수채구멍으로 흘리지 않게 조심하던 어머니, 한 톨의 밥도 남기지 말라던 부모님, 쉰밥으로 식혜를 담던 어머니, 찬장에 떠놓은 밥에 작은 불개미들이 꼬여도 물에 말아 건져내고 드셨던 할아버지, 가족들 보는 데선 최고로 비싼 330원짜리 거북선을 피웠지만 잡화장수 일 나가서는 100원짜리 환희나 샘을 피우셨던 아버지...궁핍인지 검약인지 헷간리는 부분이 있지만, 없는 데도 아껴 살아 근근히 버텨낸 인생들이 1970년대 이전의 시대상이었던 듯 합니다.
지금은 재화는 넘쳐나고 평균 국민소득은 많이 높이졌다고 하는데, 여전히 돈은 고픈, 어쩌면 예전보다 더 고픈 세상 같습니다. 욕심을 줄이고, 몸으로 때우는 걸 감수하고, 아나바다를 실천하고, 어릴 시적 일기를 썼듯 가계부를 쓰는 게 가정경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어제 든 제 생각이고, 어제부터 제 용돈에 대해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1979년 국민학교 6학년 때처럼 신문배달 부업이라도 할까 봐요. 종이신문이 퇴조라 자리가 별로 없겠네. 아니면 대학교때 했던 고등학생 영어과목 개인교수 알바? 짭짤했는데!
일단, 최대한 아껴 살고, 최대한 많이 걷는다는 게 제 원칙입니다.
살빼고 돈 붙이기에 성공하시길! 저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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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동률, 감사
감사하는 마음, 이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데 있어 너무나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나이 들어가면서 깨닫습니다. 살아왔던 여정을 되짚어 보면, 내 혼자 살아내고 이루어 낸 일이란 게 단 한 웅큼도 없는 게 인생살이인 것 같아요. 온 존재에 빚지고 사는 게 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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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접는 사람(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2019. 4. 1.)
2차세계대전 때 많은 공을 세운 아난드라는 이름의 공군 비행대장이 있었다. 적진까지 출격해 중요한 군사기지들을 파괴함으로써 적의 전쟁 의지를 꺾어 놓은 인물이었다. 한 번은 적의 포격에 격추되기도 했지만 무사히 낙하산을 펼여 탈출할 수 있었다. 제대 후에 고향으로 내려가 살았는데, 어느 날 카페에서 한 남자가 다가와 그에게 군대식으로 경례를 했다. 아난드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며, "전에 만난 적이 있던가요?"하고 물었다.
남자가 말했다.
"저는 비행대장님을 잘 압니다. 제가 근무하던 부대에 함께 계셨습니다. 전투기가 격추되었을 때 대령님은 낙하산을 타고 안전하게 착륙하셨지요. 그날 낙하산을 접어 대령님 전투기에 설치한 담당 병사가 저였습니다. 무사 생환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아난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를 와락 껴안았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말을 했다. 그의 전문적인 낙하산 접는 실력 덕분에 목숨을 구한 것이다. 만약 제대로 접혀 있지 않았다면 제때 펼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밤 아난드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같은 공군 부대에 근무하면서 그 병사를 얼마나 많이 지나쳤겠는가. 하지만 그를 알아 보지도 못했고, 자신은 장교이고 그는 사병이기 때문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낙하산을 접어 주는 사람을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가는가? 우리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해 주고, 기도해 주며, 중요한 순간마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온갖 종류의 낙하산을 접어 주는 사람을 혹시 잊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얼마나 낙하산을 접어 주며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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