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졸라, <항구의 여름>)
상쾌한 아침 맞으셨는지요? 일요일 출근에 앞서 후다닥 음악편지를 준비해 봅니다. 주말이 정상근무일인 곳에 근무하는 것도 참 독특한 경험 같은데, 나쁘지 않습니다. 대신, 월요일 화요일이 휴무입니다.^^
"밖에서 찾지 마라",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한 마디를 떠올려 봅니다. 극락도 지옥도 내 마음이 짓는 것이겠지요. 오늘 내가 어떤 세상 속에서 살 것인지도 내가 결정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세상이 요동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안과 밖을 분리해서 보라.
-아내의 조언]
1.피아졸라, <항구의 여름>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 한 곡 선곡하기 시즌 4>를 이어갑니다. 오늘은 이채훈 <1일 1페이지 클래식 365>에서 피아졸라의 <항구의 여름>을 소개한 내용 전해 드립니다. 작가가 서정실이라는 기타리스트를 추억하는 내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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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서정실이 그립다. 그는 참 소탈한 음악가였다. 대학 때 화학을 전공했는데, 음악 사랑을 못 이겨 미국 맨해튼 음대로 늦깎이 유학을 갔다. 동호회 모임에서 아마추어 친구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고, 뒷풀이에선 끝없이 노래를 반주해 주었다. 그가 기타를 치며 능청스레 노래하던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는 음악 친구들에게 최고 인기였다. 나는 그가 연주하는 피아졸라의 <항구의 여름>을 참 좋아했다. 내가 이 곡을 신청하면 서정실은 한 1초쯤 생각한 뒤-아마 다 외워서 칠 수 있는지 확인했을 듯하다-연주를 시작하곤 했다.
탱고의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 항구, 그곳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묘사한 <항구의 사계> 중 여름이 제일 각별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서정실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그는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 중 <리베르탱고<, <망각>, <아디오스 노니노>도 연주해 주었지만, 이 곡이 여전히 제일 멋진 것 같다.
그를 초청하여 작은 음악회를 열 때 내가 "서정실 씨는 세계적인 기타 리스트"라고 허풍 섞어서 소개하면 그는 "맞아요., 저 외국에서도 연주해요."라고 담담하게 응수하곤 했다. 그는 동남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이를 위한 연주도 많이 했으니까.... 그의 손끝에서 흘러 나오던 기타 선율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어서 슬프다.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느끼던 소박한 친구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걸 믿을 수 없다. 그의 기타 소리가 흐르던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은 더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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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언급된 Adios Nonino, 허지연과 서정실 씨의 연주로 들어 봅니다.
2. 임지훈, 그댈 잊었나
나이 먹으니까 점점 더 뭘 잘 잊어 버립니다. 그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현상이라기 보다는,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10여년 전에 이미 아주 기본적인 걸 깜빡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뭘 어쩌겠습니까, 그러려니 하고 사는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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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치매의 징후..(2014. 4. 9.)
2. 치매에 걸리면 가까운 기억부터 소실이 된다고 하지요? 차츰차츰 오래전 기억까지 잃고 나중에는 영유아기의 기억까지만 남는 식으로..
저는 요즘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요, 오늘 아침에는 어제 모임이 있어서 술을 꽤나 마신 뒤끝에 꾀가 나서 아내에게 사무실까지 태워달라고 해서 편하게 왔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집까지는 차로 30여분이면 가는데, 아내가 잘 도착했나 궁금해서 한 시간쯤 지난 후에 집으로 전화를 해봐도 안 받는 겁니다, 휴대폰으로 걸어도 안 받고,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고.
갑자기 돌아가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를 여러 번 시도를 해도 안 받는 겁니다. 혹시 처제 집에 조카 보러 갔나 싶어 전화를 해 봐도, 오지도 않았고 통화도 안 했다는 겁니다.
30여분을 걱정하다가, 담배를 한 대 피우러 나갔습니다.
사무실 동료와 담배를 태우며, "저를 태워주고 돌아가는 집사람이 전화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 뭐가 있을까요?" 질문해 놓고 이리저리 얘기를 하다 보니, '아까 목욕탕 간다고 얘기를 했던 것도 같고..'하는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그런 대화를 오늘 아침에 한 건지, 다른 날 한 건지 확신이 안 서는 겁니다.
다시 30분쯤 지나서 목욕탕 다녀온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 아홉통이 뭐냐? 스토커냐?^^;" 그런 소리 들었습니다.
치매라는 게 차츰차츰 진행되는 과정이라면, 오늘 얘기한 건지 어제 얘기한 건지가 긴가민가한 저도 치매 진행중인 것 같은데요?
전에 한 번 말씀드린 듯도 한데, 벌써 10년 가까이 전에도 치매 진행의 전초전 비스무리한 사건들이 있었어요.. 예전 기록을 보면,
[치매의 증후
그제 퇴근할 때이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어서, 퇴근해야지...하는 생각으로 일어섰다.
주섬주섬 핸펀을 들고, 바바리를 걸치고, 아직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는 다른 직원들에게 먼저 간다고 인사를 한 후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1층에서 현관 회전문을 나선다. 잠깐 걸어가다 보니 담배 한 갑을 사 갖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아, 길을 평소에 가던 방향인 쪽문이 아닌 정문쪽으로 발길을 향하며, 지갑을 확인하러 왼쪽 가슴께를 툭툭 만진다.
앗, 지갑이 없다...
?
?고개를 숙여 양복 저고리쪽을 자세히 보니...
아뿔사, 저고리를 안 걸치고 나왔다. 달랑 와이셔츠 위에 바바리코트...
혼자서 머쓱해 져 발걸음을 돌린다. 와이셔츠 위에 바바리가 우스워 보일 것 같아 아예 바바리를 벗어 팔에 걸고 청사건물로 들어간다....
하긴, 아침 출근하면서 핸드폰을 집에 두고 오거나, 거꾸로 사무실에 핸드폰을 두고 오는 일은 예사이고, 출근하면서 넥타이를 안 매고 나오는 날도 어쩌다 있는 나이니...
아무래도 젊은 나이에 찾아온 치매가 아닐까?
익다 만 쌀국수
어제(일요일!) 퇴근 무렵에(!) 과장님께서 작성해 놓으라신 자료가 있길래, 아침도 안 먹고 꾸역꾸역 기어 나오니 7시가 조금 넘었다. 괜찮아, 나에겐 비상식량 즉석 쌀국수가 있쟎아, 이런 생각으로.
컴퓨터를 켜기가 무섭게 쌀국수를 하나 뜯는다. 냉온수기의 온수기 꼭지를 눌러 물을 받는다. 다 받았다. 헉, 그런데, 물에 온기가 없다...
? 냉온수기에 전원이 들어와 있지를 않다... 쌀국수 하나 버렸다...
버릴 곳을 찾아 화장실까지 왔다갔다 하다 대강 처분을 하고...
? 냉온수기에 전원이 들어와 있지를 않다... 쌀국수 하나 버렸다...
버릴 곳을 찾아 화장실까지 왔다갔다 하다 대강 처분을 하고...전원을 켠다. 잠시 후 다시 쌀국수 하나를 뜯고 물을 받는다... 허거걱, 그래도 물이 냉수다... 아마도 전원이 들어오고 한참 기다려야 하나 보다. 이번에도 쌀국수는 화장실에... 

세 번째 도전... 이번에는 온수기의 물을 조금씩 뽑아 본다. 따끈해지기는 하는데 좀체로 팔팔 끓는 그 온도는 안 나온다... 어쩌랴... 대강 따뜻한 물을 받는다...
오늘 아침 걸르고 나와 일찍부터 일하려던 구상은 쌀국수와 씨름하다 보니 어느새 여덟시가 다 되어가는 통에 반쯤은 망가지고야 말았다. 잘 익지도 않은 쌀국수 먹고... 와이프가 밥 준다고 할 때 먹고 왔으면 벌써 본격적으로 일하고 있을 텐데...
오늘의 교훈 :
1) 인생은 자기 뜻대로만은 절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편안히 생각하며 살아야 한단다...
2) 마누라 말 들어서 손해 볼 일 별로 없다...ㅋㅋㅋ
일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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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옥희, 나는 몰라요
철학 관련 서적에서는, 세상을 '오직 모를 뿐'이라는 자세로 살라고 하는 권고를 많이 하더라구요. 세상을 사는 요령이라기 보다는, 실제 내가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걸 잘 자각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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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모를 뿐(2018. 4. 9.)
오늘도 5월 행사 관련해서 한국으로 보낼 공식적인 통보 내용이 다른 부서에서 오기를 기다리다 하루가 다 간다. 나는 빨리 전달받아 한국에서 준비할 수 있게 알려줘야 하는데, 바쁜 건 내 마음 뿐. 어쩌겠는가. 마음의 속도를 늦추라더라. 그런 제목의 책도 있더라. 수십년 존속한 조직이니까 이 사람들도 경험에서 우러나온 시간에 대한 감각이 있겠지. 기다리는 게 일이다. 일이 몰릴 때 감정적으로 폭발하지 않으려면 내 스스로 차분해지는 편이 정답이다.
조직개편의 와중에서 부서를 옮기는 일이 진행중이지만, 현재는 기존에 있던 부서가 일부 가지치고 되고 부서명이 바뀐 데 아직 소속되어 있는데, 그 역할과 위상 강화 방안을 논의한다고 신임 부서장이 5월에 연찬회(retreat), 이번 주에 미니 연찬회를 갖는다고 엄청 의욕을 보인다. 교과서적으로야 발령나는 날까지 기존 부서의 일에 적극 참여하는 게 맞겠지만, 5월 행사 준비도 있고 부서 옮기는 소식에 더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인 걸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입이라도 뗄만한 건덕지도 없으니, 흥미가 일어나지도 않고.
그 와중에 출장결과 보고서 작성 관련해서 애매한 부분이 있어 '나는 이 조직에 와서 이 일을 처음 해 봐서 잘 몰라서 그런데 어쩌면 좋겠는지 조언 좀 해 주라.'라는 취지의 간단한 이메일 메시지를 보냈다. '잘 몰라서 그런대요..'라고 시작하는 게 참 쪽팔린 일이지만, 그게 사실인 것을 어쩌랴. 맨날 지푸라기 붙드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묻는 게 일이다. 메일 받은 사람도 무슨 정답을 가진 건 아니라는 게 함정. 어느 스님인가가 '오직 모를 뿐'이라는 자세로 탐구 정진하라는데, 진짜 오직 모를 뿐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2020. 4. 9.)
검역본부 동식물위생연구부장으로 농식품부에서 갓 고위공무원단 승진한 사람이나 해외근무하고 막 돌아온 사람이 많이 온다. 그리고 대부분 그 자리에서 오래 근무하지 않고 다른 자리로 떠난다. 그러다 보니, 연구부의 직원들이 '곧 갈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부장을 대하는 것 같다.
그렇게 나그네로 보아 주니 어쩌면 부담감 덜하고 마음 편할 수도 있지만, '과객'의 자세로 사람들이나 업무를 대하고 싶지는 않다. 하루를 있어도 내 일 아닌가. 오버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수처작주'라 했다. 오늘 내가 머물고 있는 이 곳이 바로 내 자리라는 자세로 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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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인수, 이별의 부산정거장
옛날의 일을 두고 뭐가 옳았네 그렀네 하는 얘기는 종종 착각에 기반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들여다 보는 일이라, 결과를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 말이죠. 실은 그 당시에도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들을 했을 것인데, 안개 속의 선택이었을 것일 텐데 말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맞을 지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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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의 굴욕은 피할 수 있었을까?(2021. 4. 9.)
저자는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이 1600년대 초 조선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그 시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패권국가 명과 그에 도전하는 신흥강국 후금의 역학관계가 미국과 중국이 G2로 운위되는 지금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논법이다.
천하의 패권을 명청이 공유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 시대에 두 패권국이란 개념은 없었을 테니.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상대방의 절멸을 목표로 하는 문자 그대로의 전쟁을 한다는 상황도 상정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면, 직접적인 무력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명과 청 사이에 낑긴 조선의 입장은 지금의 대한민국보다도 더 난해했던 것 같다.
폐주가 된 광해군 식의 등거리외교 노선이 지속되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사실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18세기 조선부터 한국현대사까지를 읽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관련된 글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 국가가 백성/국민을 보호하기는 커녕 적들의 진격로에 버려 두었고 수탈과 겁박과 학살을 일삼기만 했다는 느낌만 받게 된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도 아니었고, 백성/국민들이 공동체는 별로 관심이 없고 제 앞가림에 광분하게 된 것도 다 역사적 연유가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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