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 <난넬> 7중주 K.251 중 '안단티노'(202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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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난넬> 7중주 K.251 중 '안단티노')
상쾌한 아침 맞으셨는지요? 4월도 중순에 접어들었습니다. 시간이 참 빨리도 흘러가네요. 꽃샘추위 비슷한 게 와 있지만, 조만간 더위가 오겠지요. 사람 살기 쾌적한 기온과 날씨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욕심이란 얘기를 떠올려 봅니다.
오늘은 독서모임이 있어서 서울대공원에 갑니다. 독서 얘기는 잠깐이고, 이런 저런 고담준론(전문용어로 '수다') 하게 되겠지요. 휴일에 즐거운 일정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모짜르트 <난넬> 7중주 K.251 중 '안단티노'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 한 곡 선곡하기 시즌 4>를 이어갑니다. 오늘은 이채훈 <1일 1페이지 클래식 365>에서 모짜르트의 <난넬> 7중주 k.251중 '안단티노'를 소개한 내용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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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또 한 명의 모짜르트를 기억하지 않는다. 모짜르트의 5살 위 누나 마리아 안나(애칭 난넬, 1751~1829). 그녀는 어릴 적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유럽에 이름을 날렸지만 18살 되던 해에 음악을 중단했다. 여자는 집에 있으면서 결혼을 준비해야 한다는 아버지 레오폴트의 명령 때문이었다. 14살 모짜르트가 아버지와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날 때 누나는 집에 혼자 남아서 좌절해야 했다.
그녀는 작곡에도 재능이 있었다. 볼프강의 편지에는 누나의 작품을 칭찬하는 대목들이 나온다. "누나가 작곡을 그렇게 잘하다니, 정말 놀랐어. 한마디로 이 노래는 참 아름다워." 볼프강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뒤 여러 사람 앞에서 피아노를 멋지게 연주한 뒤 "이 곡을 쓴 사람은 누나예요"라고 밝힌 적도 있다. 난넬의 작품은 한 곡도 전해지지 않는다. 1784년, 33살의 난넬은 아이가 다섯 딸린 중년 남자의 세 번째 아내가 됐다.
남매는 화려한 어린 시절을 나누었지만, 어른이 되면서 누나만 어둠 속에서 시들어갔다. 두 사람은 동생의 결혼에 대한 이견으로 갈등하다가 멀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혈육이었고, 누구보다 가까인 대화를 나눈 친구였다. 동생이 충분히 오래 살아서 인생의 황혼을 누렸다면 화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모짜르트는 1776년 7월 26일, 누나 난넬의 명명 축일을 기념하기 위해 <난넬> 7중주곡을 작곡했다. 슬픔에 빠져 있는 누나에게 이 곡은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맑고 예쁜 오보에 솔로가 노래하는 3악장 '안단티노'는 그녀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을 것이다. 언제나 상냥했던 모짜르트의 미소를 닮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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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이포, 아이유, 봄 사랑 벚꽃 말고
아이유는 노래도 잘 하고 연기도 잘 하고, 참 뛰어난 연예인 같습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펼치는 연기를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주인공과 일체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오늘은 황사비에 돌풍이 예보되어 있네요. 2015년 심리학 교수님과 심리상당을 할 때 들은 얘기가 기억납니다. '맑은 하늘만 하늘이 아니다. 흐렸다 개었다 맑았다를 반복하는 게 하늘이다. 마음도 그렇다. 마음이 늘 푸르르기만을 바라는 것도 욕심이다.' 뭐, 그런 취지의 말이었어요. 마음이 꿀꿀하거나 어두운 시간도 있을 수 있죠. 그런 마음이 찾아왔나 보다 생각하며 약간 거리를 두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정답인 경우가 있습니다.
늘 해가 나고 맑기만 하고,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없다면 그 동네는 결국 사막이 될 수 없다고도 말하더군요. 한 색깔에 머물지 않고 교대로 찾아오는 무지개색의 감정이 어쩌면 다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3. The Danish National Symphony Orchestra, The Godfather OST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곡입니다. 이유는 잘 몰라요. 조폭 영화인지 가족 영화인지 장르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의 든든한 뒷배가 되는 '대부'가 있으면 좋겠다는 잠재의식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젠 내게 그런 '대부'가 있기를 기대하는 나이가 아니라, 누군가를 받쳐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나이가 진즉부터 되어 있는 나이이겠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마음 의지할 곳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쉽게 버려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이 중년에 새삼스레 종교를 갖게 되는 것인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