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프렐류드 Db장조 Op.28-15 <빗방울>)
상쾌한 아침 맞으셨는지요? 주말이 근무일인 생활 2주차, 아직 적응중이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근무패턴인 것도 같습니다.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인데, 주말 근무를 해야 하는 대신 월화 휴무라는 남이 못 갖는 걸 가졌으니 감사해야겠죠.
신록이 빛나는 시절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사진은 2020년 어느 날이던가, 김천 하늘이 붉게 물든 날의 모습입니다.
1.쇼팽 프렐류드 Db장조 Op.28-15 <빗방울>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 한 곡 선곡하기 시즌 4>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이채훈 <1일 1페이지 클래식 365>에서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소개한 내용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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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장마가 이어지는 시기에는 쇼팽 전주곡 <빗방울>을 들으며 장마의 서정을 느껴보면 어떨까. 오른손이 맑고 트명한 선율을 노래할 때, 왼손이 연주하는 8분음표가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방울처럼 뚝뚝 흘러 내린다.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지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이 곡은 조르주 상드와 요양하던 스페인 마요르카 섬에서 작곡했다고 한다. 상드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녀는 폭풍우 몰아치는 날 쇼팽을 혼자 둔 채 두 아이와 함께 물건을 사러 외출했다. 마차가 진흙탕에 빠져서 움직이지 못했다. 천신만고 끝에 발데모사 수도원에 돌아와 보니 쇼팽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같았다고 한다. 쇼팽이 상드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작곡한 게 바로 이 곡이라는 설명이다. 상드는 이 곡이 "두렵고 우울한 기분에 빠지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우울해지진 마시길...비 갠 뒤 파란 하늘이 살짝 보이고, 햇빛이 빗방울에 반짝, 반사될 때 곡이 끝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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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Neil Young, Heart of gold
제목이 '금덩이 같은 마음'쯤 될까요? 인생의 해답을 마음 밖에서 찾지 말라는 지눌 스님의 글은 언제 읽어 봐도 명문입니다.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이처럼 명쾌하게 정리한 글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답은 내 마음 안에 있다...듬직한 한마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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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찾지 말라
지눌
삼계(三界)의 뜨거운 번뇌가 마치 불타는 집과 같은데, 어찌하여 그대로 머물러 긴 고통을 달게 받을 것인가. 윤회를 벗어나려면 부처를 찾는 것 보다 더한 것이 없다.
부처란 곧 이 마음인데 마음을 어찌 먼데서 찾으려고 하는가. 마음은 이 몸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육신은 헛것이어서 생이 있고 멸이 있지만,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끊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 몸은 무너지고 흩어져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사라지지만, 마음은 항상 신령스러워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고 한 것이다. 애닯다, 요즘 사람들은 어리석어 자기 마음이 참 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자기 성품이 참 법인 줄 모르고 있다.
법을 구하고자 하면서도 멀리 성인들에게 미루고, 부처를 찾고자 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살피지 않는다. 만약 마음밖에 부처가 있고 성품밖에 법이 있다고 굳게 고집하여 불도를 구한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티끌처럼 많은 세월이 지나도록 몸을 사르고 팔을 태우며, 뼈를 부수어 골수를 내고 피를 내어 경전을 쓰며, 항상 앉아 눕지 않고 하루 한 끼만 먹으면서 대장경을 줄줄 외고 온갖 고행을 닦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치 모래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서 아무 보람도 없이 수고롭기만 할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바르게 알면 수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진리를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을 두루 살펴보니 여래의 지혜의 덕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하시고 '중생들의 갖가지 허망한 변화가 다 여래의 밝은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하셨으니, 이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이룰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 마음을 밝힌 분들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들도 이 마음을 닦은 분들이며 미래에 배울 사람들도 또한 이 법을 의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들은 결코 밖에서 찾지 말라. 마음의 바탕은 물들지 않아 본래부터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니, 그릇된 인연만 떠나면 곧 당당한 부처다.
[출처] 수심결(修心訣)-밖에서 찾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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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정선, 산사람
인생 여정을 등산에 비유하기도 하고,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하고, 단거리 달리기 경주의 연속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미 하산길에 접어든 걸로 볼 수 있는 저로서는 하산길에서 인생의 의미를 더 잘 만날 수 있다는 김형경 씨의 비유가 고맙긴 합니다. 물론, 인생여정을 등산이나 달리기 경주가 아닌 '산책길'로 비유한 정호승 시인의 관점이 더 마음에 들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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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퍼 왔는 지도 기억이 안 나는, 몇 년 전에 읽은 글..
중년, 인생의 하산 길에서
소설가 김형경은 『천 개의 공감』이라는 책에서 인생의 중년에 해야 할 중대한 과제로서 목표의 수정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생애 초기에 우리가 설정한 삶의 목표는 그 시기의 결핍감이 반영된 것들입니다. 그동안 삶을 추진시킨 에너지 역시 성적 욕망과 공격적 추동에서 나왔습니다. 그것은 사랑받기 위해, 결핍을 메우기 위해, 질투하고 시기하는 힘에 의해 추진되는 에너지였습니다. (....) 이제는 새롭게 형성된 정체성에 맞춰 삶의 목표를 수정하여야 합니다. 하던 일을 바꾸라는 게 아닙니다. 그 일을 계속해서 더욱 전문성을 쌓으면서 내면의 목표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업을 해서 멋진 사옥을 짓는 게 목표였다면, 이제는 그 사업을 통해 어떻게 사회적인 책임을 완수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더 늦기 전에 변신을 시도하고 싶다. 익숙한 것들에만 머물던 시선을 조금 비끼어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우고 싶다. 사십대까지 좋아하던 음식, 취미, 음악, 이성의 타입 등은 그 이후에 거의 그대로 이어진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의 습관을 바꾸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호나 취향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보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실존의 의미 충전방식을 근원적으로 리모델링하지 않으면 허욕에 치여 옹색해질 것이다. 인생의 궤도에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고지식한 채로 현실에 순응하면서 조로(早老)해 버릴 것이다. 반면에 낡은 껍질을 벗고 혁신과 도전을 감행한다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내려갈 때 / 보았네 / 올라갈 때 / 보지 못한 / 그 꽃
고은 선생의 「그 꽃」이라는 시다. 여기에서 꽃은 무엇을 상징할까. 성장과 출세의 오르막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좌절과 낙심의 내리막길에서 새삼 눈에 들어오는 존재의 의미는 아닐까. 그것은 원점으로 인생을 차분하게 조감하는 시공간이 지금 중년 남성들에게 절실하다. 위의 시에 대해 이문재 시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등산을 좋아하는 분들은 다 아시리라. 등산은 하산에서 완성된다. 집에 도착해 등산화 끈을 풀어야 등산은 끝난다. 산정에 올랐다가 내려오지 못하면, 그것은 등산이 아니다. 조난이다. 산을 오를 때는 꽃이 보이지 않는다. 정상이 꽃이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려는 내 의지, 내 체력이 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상에 도달하는 순간, 그 꽃은 져 버린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오르막길만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와 젊은이만 있다. 올라야 할 정상만 있다. 마흔 줄에만 들어서도 곳곳에 찬밥 신세다. 내리막길에는 안내판도 없다. 진짜 꽃은 홀로 내려오는 하산 길에 피어 있다. 그런데 난감하다. 내리막길에서 발견한 이 꽃, 이 꽃을 누구에게 바치랴.
지금 한국의 남성들을 짓누르는 강박은 무엇인가.
‘끗발’에 대한 야망이다. 남부럽지 않은 자리에 올라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오기 같은 것이다.
그것이 급속한 경제 성장의 에너지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 신화가 끝나고 어쩔 수 없이 내리막길에 들어선 마당에 인생관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패배와 낙심도 삶의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일부분으로 받아드리고, 자기와 타인의 나약함을 보듬어 안은 측은지심이 요구된다. 유능함과 무능함 사이의 좁은 거리를 확인하면서 세상에 대해 보다 겸허해져야 한다. 하산하는 길에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열어야 한다.
김찬호 / ‘생애의 발견’중에서(발췌정리)
(위 글의 제목 ‘중년, 인생의 하산 길에서’는 독자가 임의로 정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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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G.O.D, 어머님께
파킨슨병을 앓던 엄마가 세상을 떠나신 지도 벌써 4년이 넘었습니다. 상상했던 것보다 엄마 생각이 별로 안 나다가도 가끔 예전의 기록을 보다 보게 되면, 행신동 본가에 가면 아직도 엄마가 살아 계실 것만 같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전화를 걸면 받아주실 것도 같구요. 오늘도 옛 기록을 보며 문득 엄마 생각이 나네요. 말 한 마디라도 나눌 수 있게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하는 게 무조건 정답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 전화라도 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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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런 날의 어느 날의 일상(2016. 4. 16.)
행신동 본가에 전화를 건다. 집전화, 아버지 전화, 엄마 전화 이렇게 세 가지 대안이 있지만 집전화로 건다.
역시 아버지 목소리. 어머니는 거동이 좀 불편하시니 늘 아버지가 받으신다.
얼마 전에 엄마가 장애 등급 판정을 받아 아마도 사회복지사가 몇 시간씩 들여다 보시는 모양이다. 점심 때 그 분이 계란을 삶아주어 먹었다는 얘기, 손가락만 하여 상품성이 떨어져 싼값에 사온 고구마를 깎아 드셨다는 얘기, 사촌 누나 아들 장가 보내는데 너무 멀어 가기 어렵다는 그런그런 얘기들을 하다 엄마를 바꿔달라 하니 엄마는 거동이 불편하니 엄마 전화로 걸라 하신다.
목소리를 왕창 키워 얘기해도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으신지 소통이 잘 안 된다. 밥 잘 드시란 말만 몇 번을 되풀이하다 전화를 끊는다. 끊기 전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은 "항시 건강혀야혀".
장어중탕 다 드셨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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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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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곧 문 닫는다고 합니다. 백업 후 네이버로 오세요~~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지나가는 2023/04/16 13:15 삭제 |